[시론] 후유증 큰 은행상대 집단소송

저당권설정 환불소송 등 잇따라
다른 고객에게 추가비용 떠넘겨
남발되면 서비스혁신 기대 못해

박훤일 < 경희대 법학 교수 onepark@khu.ac.kr >
최근 들어 기획소송이란 말이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한다. 정유사들이 LPG 가격을 담합했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하자 어느 로펌이 개인택시 기사들에게 가격담합에 따른 피해를 보상받도록 해주겠다며 집단으로 정유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최근에는 주택담보대출에 따른 잘못된 금융관행으로 고객들이 입은 피해를 되찾자며 소비자원이 집단소송 신청을 받기도 했다. 새로 입주하는 신도시의 아파트 시세가 주변 인프라 건설 미비로 분양가를 밑돌자 잔금지불을 거부하고 계약해제를 요구하는 집단소송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시민 권리의식이 높아진 것은 바람직하나, 문제는 승소 가능성에 대한 확신도 없이 분위기에 이끌려 소송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제소자들이 자칫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아파트 잔금 지불을 연체한 채 계약 해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벌일 경우 은행에 의해 예금도 압류 당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은행더러 근저당권설정비를 부담하라는 소송을 낸 사람은 은행의 ‘나쁜 고객’ 리스트에 올라 추가대출이나 기한연장을 받기 어려울지 모른다.

은행의 근저당권설정비 부담 문제는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가계대출의 경우 종전에는 아파트 같은 담보를 제공하면 은행이 무담보대출보다 싼 금리로 대출해주는 대신 그에 필요한 근저당권설정비는 고객이 부담하는 게 원칙이었다. 은행대출 시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은 고객들이 생활비나 사업자금 등 돈이 더 필요하면 담보여력의 범위에서 추가대출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니 더 이상 대출자금을 쓰지 않고 예정보다 일찍 갚는 고객은 휴대폰 위약금처럼 은행에 중도상환 수수료를 물어야 했다.

근저당권설정비는 법적으로 필수적인 근저당권설정등기를 위해 들어가는 감정평가비용, 등록세, 인지대, 법무사수수료 등으로 구성된다. 요컨대 은행고객은 은행에서 무담보대출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장기간 자금을 빌리기 위해 기꺼이 그 비용을 부담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10년의 대법원 판결과 그에 따른 서울고법 판결로 인해 은행들은 하는 수 없이 여신거래표준약관을 개정하고 2011년 7월부터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비슷한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저당권설정비를 당연히 차주가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우리나라의 기존 판례도 소유권이 채권자에게로 넘어가는 양도담보를 제외하고는 담보권설정비는 고객이 부담하는 게 옳다고 했다. 현재 대부분의 은행이 과거 10년간 고객이 부담했던 근저당권설정비를 환급하라는 집단소송의 피고로 돼 있다.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에게 집단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여러 곳에서 계약해제를 요구하는 집단소송에 직면해 있다. 만일 은행이 패소한다면 그 금액이 천문학적 규모에 달하므로 은행들은 더 이상 타협에 나서지 않고 강공책을 쓰거나, 배상액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서비스 전반에 대한 수수료를 올리려 할 것이다.

그 결과 근저당권 담보대출과 무관한 일반고객들까지 영문도 모른 채 물지 않아도 될 비용을 부담할 우려가 있다. 이미 근저당권설정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법무사들이 수수료 삭감의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감독당국은 감정평가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담보용 부동산의 감정평가도 비용절감 차원에서 은행에 일부 허용하기로 했다.

근저당권설정비는 금리혜택을 본 수익자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은행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은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게 된다. 아파트담보대출과 무관한 다른 고객들한테 추가로 비용을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은행에 대해 서민대출은 특별하니 일이 생길 때마다 양보하라고 한다면 이른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에 있어서 혁신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게 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마치 도박판처럼 기획소송에 참여한다면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고 가뜩이나 소송이 많은 우리나라에 제2, 제3의 소송 쓰나미를 몰고올 가능성이 크다.

박훤일 < 경희대 법학 교수 onepark@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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