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흔들리는 과학행정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며칠 전 일본 내각부의 노다 세이코(野田 聖子) 특명대신이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노다 대신은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을 통합한 문부과학성이 출범한 이후 일본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특임 장관인 셈이다. 총리 주재로 월 한 차례씩 열리는 종합과학기술회의(CSTP)와 더불어 일본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에서 새로 구축한 대표적 행정체제가 바로 이것이다. 2001년 조직개편 당시 과학기술청 출신 50명으로 출발했던 과학기술정책실의 인적 규모는 최근 100여명으로 크게 불어났다고 한다.

노다 대신은 이번 방문 기간 중 국내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을 합치긴 했지만 과학정책은 여러 부처에서 추진할 수밖에 없는 만큼 예산이 낭비되고 기술개발의 효과도 떨어질 수 있다"며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종합과학기술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예산을 배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과학기술행정조직 개편에 따른 후속 조치를 꼼꼼히 살펴보고 그 성과를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할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의 과학기술 행정체제와 정책결정 시스템의 개편 결과는 과연 어떤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산적한 교육분야의 시급한 현안에 밀려 과학기술 쪽에 신경을 제대로 쓸 여유가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과학기술보좌관 제도가 없어지면서 실무적으로 정부의 연구개발정책을 조정하는 기능도 기대하기 어렵다. 사무국 조직도 없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기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도 교육분야까지 덤으로 떠맡으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마당이다.

물론 청와대가 얼마 전 과학기술특보를 임명하긴 했지만 관련 업무를 추진할행정조직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어 특보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만만치 않다. 과학기술분야 컨트롤 타워들이 무너지고,그나마 가동 중인 조직마저 기능을 못하면서 과학기술 행정과 정책시스템이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 과학기술 전략 수립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은 물론 과학에 대한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이 현장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를 지경이다. 과학기술 투자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더라도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까닭이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는 결국 교육과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게다.

그런 점에서 국가 연구개발체제를 총괄 지휘할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정부부처 조직을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우선 과학기술특보가 실질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도 있다. 발등의 불인 경제위기 해결이나 교육현안에 밀려 과학기술 개발을 소홀히 하면 그 결과는 국가 경쟁력의 위기로 나타난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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