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증시, 연말이 두려운 이유

한 달 전쯤에 중년으로 여겨지는 독자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코스피지수가 1400선 밑으로 내려오던 무렵이다. 그는 "연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왜 '눈에 보이게' 주식을 매수해 외국인의 매물을 받아주느냐"고 항의했다. "어차피 팔고나갈 외국인인데 차라리 주가가 떨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외화유출이라도 줄이는 길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지난달은 증시 사상 유례없는 공포의 시기였다. 주가는 3년여 만에 1000 밑으로 추락하고 일반투자자들은 현금을 확보하려고 보유주식을 서둘러 처분하는 등 시장이 거의 무너진 상태였다. 지난달 말에야 한·미 통화스와프(교환) 협정 체결로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해 증시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이처럼 증시가 요동을 쳤던 이면에는 끊임없는 외국인의 주식매도가 도사리고 있었다. 외국인은 빌려 팔았던 주식을 되사들이는 날도 더러 있었지만, 지난달에만 4조원 넘게 주식을 팔았다. 주가가 반등한 이달 들어서도 매물공세는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월을 제외하면 작년 6월부터 이달까지 18개월째 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국내 주식을 계속 처분하는 외국인의 정체는 뭘까. 금융감독원에서 내놓는 국적별 외국인 매매동향을 보면 그 단초를 알 수 있다.

최근 자료인 지난 9월을 놓고 보면 미국이 가장 많은 3조1487억원을 차지했다. 국내 주식을 팔아 본국의 유동성 부족분을 충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눈에 띄는 것은 조세회피지역인 케이맨아일랜드와 룩셈부르크의 매도규모가 각각 1조원을 넘는다는 점이다. 이들 지역은 많은 헤지펀드들이 본거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국과 조세회피지역의 매도만 5조원을 넘어 전체 외국인의 한 달 매도규모(4조5281억원)를 웃돌고 있다. 헤지펀드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미국계 자금과 함께 국내 증시의 주요 매도세력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프랑스나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등의 자금이 국내 주식을 사들인 것과는 달리 이들 케이맨아일랜드와 룩셈부르크 자금은 오히려 매도규모를 늘리는 추세다.

헤지펀드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금융회사로부터 원금의 2~5배까지 과도하게 자금을 빌려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관행이다. 이런 헤지펀드들이 국내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있는 것은 연초 이후 30%를 웃도는 투자손실과 이에 따른 고객들의 잇따른 환매(펀드청산)요구 및 유동성 부족이 맞물리면서 자금마련이 발등의 불이 됐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문제다.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헤지펀드의 70% 정도는 매년 12월에 투자 펀드를 결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종 해외변수들이 국내 증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지금 일각에서 2차 쇼크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연말까지 헤지펀드 환매 및 청산 매물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이처럼 거대한 매도세력이 자리잡고 있는 한 시장은 작은 충격에도 다시 '오프로드 레이스'로 내몰릴지 모른다. 정책 당국자들은 "메인스트리트(실물경기)가 고통을 받는 한 월스트리트가 번창할 수 없다"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 소감처럼 국내 실물경기 침체를 차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손희식 증권부 차장 hssoh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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