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美 입국 외국인은 용의자?

"왼손과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여기에 누르세요,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안경을 벗고 이곳을 쳐다보세요. 며칠 동안 체류하시죠." 5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외국인 입국심사대 앞에 서자 마치 경찰서 취조실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가 엄습해왔다. 차가운 금속의 지문채취기와 야구공 크기의 동그란 디지털 카메라가 매섭게 이방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국 정부가 테러범을 막기 위해 외국인 입국자를 상대로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을 실시한 첫날의 표정이다. 새로 등장한 보안기기 앞에 선 기자는 낯설기보다는 그들 앞에 완전히 노출됐다는 사실에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공항의 입국심사에 지문채취와 사진촬영까지 더하다보니 입국자들이 심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도 엄청 늘어났다. 1시간이 넘는 경우도 있다. 심사대 앞에 줄지어 선 외국인들은 대기시간이 이처럼 길어지자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모멸감을 느끼는 표정이 역력했다. 미국과 비자면제협정을 맺고 있는 유럽 등 27개국 국민의 경우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이 면제되는 것을 그들이 모를리 없는 까닭이다.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연간 2천3백여만명에 달하고 이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자료를 미국 정부가 관리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자국 정부도 갖고 있지 않은 신상자료를 미국 정부가 갖게 되는 셈이다. 미국의 시민단체마저도 '명백히 인권을 침해하는 생물학 정보 취득시스템'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터이다. 브라질은 미국의 이같은 조치에 대응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지난 1일부터 상파울루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미국인을 상대로 기습적으로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을 단행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브라질의 자존심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테러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외국인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로 인권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보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국제적으로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는 미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샌프란시스코=최명수 산업부 IT팀 기자 may@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