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철새 먹이

늦가을 시골에 가면 감나무 끝에 함초롬히 매달려 있는 홍시가 눈에 띈다. 감을 다 수확하지 않고 까치 등 야생조류를 위해 남겨둔 소위 '까치밥'이다. 홍시 하나라도 날짐승과 나누려는 우리네 넉넉한 인심이 돋보이는 풍경이다. 그토록 가난하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도 까치밥만은 남길줄 아는 여유를 가졌었다. 동물들에 대한 나눔과 베품의 정신은 콩농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콩농사를 할 때는 세알씩을 심는데 한알은 공중의 새먹이용이고,한알은 땅속의 벌레먹이용이며 한알만이 농부의 몫일 뿐이다.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라 외치며 음식의 일부를 던지는 것도 짐승들과의 공생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한갓 미물이라 할지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우리 민속의 속설에서도 엿보인다. 아침 거미는 "기쁜 소식이 올 징조"라며 결코 잡지 않았고,방안의 불개미는 "재물을 가져 온다"며 죽이는 법이 없었다. 마을에 내려온 산짐승이 비록 해를 끼쳤어도 포획하지 않고 "재수없다"며 되돌려 보냈다. 이렇듯 자연속의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지혜가 은연 중 우리 생활속에 깊숙이 배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생태계파괴는 심각한 지경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져 다소 위안이 되고 있기는 하다. 금강 하구둑에 인접한 군산시 나포면 십자들 1백30여만평 들판에는 수확하지 않은 벼들이 곳곳에 서 있다. 겨울 철새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다. 일부 농가는 철새먹이로 벼와 보리를 따로 재배하기도 한다. 지금은 청둥오리가 도착했고 이달 말이면 가창오리 기러기 고니 등 수십만 마리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이곳이 철새마을로 자리잡기까지는 주민들과 조류보호단체 등의 숨은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밀렵을 감시하고 독극물 올무 등을 제거했다. 철새와 주민들의 아름다운 동거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까치밥이나 벼 한 이삭을 남겨두는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리일지 모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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