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떼법'에 밀린 학력평가

"한국에는 모든 법이나 제도에 우선하는 '정서법'이란 게 있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면 법전에 있는 법조문도 무시당하기 일쑤다. '정서법'보다 더 무서운 게 있는데 바로 '떼법'이다. 집단적으로 떼를 지어서 막무가내식으로 우기면 뭐든지 된다는 식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 각종 정부정책들이 이해관계자들의 불합리한 압력에 밀려 '용두사미'로 끝나버리거나 왜곡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현실을 두고 한 말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오는 15일 실시할 계획인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둘러싼 논란도 전형적인 사례다. 전국 약 70만명의 초등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교육부가 진단평가를 추진하자 전교조 등 교원단체들이 "초등학생까지 점수경쟁에 몰아넣는다" "학교간 서열화를 부추긴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상주 교육부총리는 그러나 지난달 25일 "당초 계획대로 시험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각 학교에서 책임지고 교육하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전체 학생에 대해 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를 분석해 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 그랬던 교육부가 1일 "시험은 모두가 보되 결과 분석은 전체의 10%만 하겠다"며 종전 방침을 뒤집었다. 교육 현장에서 서열화에 대한 우려가 크고 진단평가에 대비한 문제풀이가 심하다는 게 이유였지만 이 논리는 이 부총리가 강행의지를 확인했을 때도 익히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교육부의 방침이 단 1주일만에 비틀어져버린 진짜 내막은 다른 데 있다. 교육부의 수정안대로 추진될 경우에도 학생들은 전부 시험을 봐야하기 때문에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 결국 이번 결정은 내심 학생들에 대한 평가 결과가 교사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작용해 평등주의가 만연한 교육계에 경쟁논리가 도입될까 질겁을 하는 교원단체들의 집단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무마용'인 셈이다. 아무리 정권말기라고 하지만 타당한 정책조차 이런 식으로 표류한다면 과연 직업공무원제도가 필요한지 회의가 든다. 교육부는 이번에 너무 허무하게 후퇴해버렸다. 이방실 사회부 기자 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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