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전문기자의 '클릭! 아트'] '위기' 자초한 화랑

화랑들이 무척 어려운 모양이다. 미술계 불황은 1991년 이후 10년 이상 지속된 터라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른 것 같다. 미술계를 리드하는 이른바 메이저 화랑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비명은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같은 인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거래되지 않는다는 아우성이다. 미술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박수근 작품 한 점을 팔면 두서너달 걱정 없이 화랑을 운영할 수 있는 큰돈이 생긴다. 그런데 그게 막혔으니 화랑들로선 눈에 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화랑들 중엔 이같은 '거래 부진'의 화살을 경매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부터 시작된 '박수근 붐'이 다른 인기작가로 확산되면서 경매를 통한 미술품 거래는 상대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부 화랑에선 "경매가 손님(컬렉터)을 다 빼앗아 갔다"고 푸념한다. 하지만 화랑들의 이같은 볼멘소리는 시장원리 측면에서 보면 설득력이 약하다. 컬렉터가 화랑을 통해 소장품을 팔면 판매가의 절반 정도를 화랑에 줘야 한다. 이에 반해 경매에 출품해 낙찰될 경우 낙찰가의 85% 이상을 가져갈 수 있다. 경매업체에 줘야 하는 수수료는 낙찰가격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리 비싸도 15%를 넘지 않는다. 이러니 컬렉터들이 화랑을 기피하고 경매를 선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경매를 통한 미술품 거래 규모는 앞으로도 커질 게 불보듯 뻔하다. 큰 화랑들이 요즘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遠因)은 인사동에 있는 한 화랑 대표의 지적처럼 '스스로 화를 자초한 꼴'이 아닌가 싶다. 화랑들은 미술 경기가 좋았던 1980년대 후반 이후 당장 큰돈이 들어오는 인기작가들의 작품 거래에 치중한 나머지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키우는 일을 등한시했다. 게다가 경매업체의 등장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막상 경매로 손님들을 뺏기고 나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식이 돼버린 셈이다. 다행히 일부 화랑들이 해외 아트페어에 젊은 작가들을 참여시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다. '작가의 발굴·육성'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화랑 존속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점을 새삼 되새겨본다. s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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