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戰線) 없는 심리전

"전쟁을 벌이겠다면 빨리나..." 최근 증시에서 부쩍 자주 나오는 말이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대치 상태로 인한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다름 아니다. 25일 증시는 이러한 불안감에 얼마나 취약한 지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장후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교전이 발생했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소식이 금융시장에 퍼지면서 주가가 급강하, 연중 최저 수준에 근접한 것. 뉴스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반발 매수세가 일어 소폭 반등했지만 이미 얼어버린 심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 변동성, 빠른 손놀림 = 이같은 변동성은 비단 국내 증시에만 국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월요일 뉴욕 증시는 재개장 후 엿새만에 급반등했다. 대부분 업종이 상승했고 오름폭도 컸다. 그러나 5%가 넘는 상승을 설명할 뚜렷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았다. 일부 증권사의 주식 투자 비중 확대, 항공산업 지원, GE의 긍정적인 전망 등을 호재로 들고 나왔지만 폭발적인 매수 주문을 설명하기엔 낙폭이 과대했다는 단순한 논리가 차라리 설득력 있게 받아 들여졌다. 당분간 이러한 변동성 확대는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의 폭격이 시작되면 전쟁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라지겠지만 전쟁 확산 우려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또 아직까지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계산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아울러 추석을 앞둔 불확실성을 안고 귀향길에 오르기엔 돌아올 '과실'이 크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군중심리'가 펀더멘탈에 한발 앞서 나가면서 업종이나 테마구분에는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 통신, 증권주, 일부 내수관련주 등이 반등의 중심에서 탈출구를 모색하기도 하지만 별다른 특색없이 모든 종목이 내리거나 오르는 '떼거리 움직임'이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수급상으로도 급격한 변동시 매물을 받아내며 안전판 역할을 담당할 주체가 나설 가능성은 적다. 개인이 엿새 연속 매수우위를 나타내고 있으나 사흘째 순매수 규모가 감소했고 개별 종목 위주로 저가 매수에 치중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외국인은 뮤추얼펀드 환매 우려 등에 따라 뉴욕 증시와 연동하면서도 매도에는 적극적, 매수에는 소극적인 패턴을 구사할 공산이 크다. 기관은 이날 나온 순매수 결의 해제를 반기며 보유 비중을 축소, 지수 방어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뜻을 내비쳤다. ◆ 전쟁불안감 사라져도 = 빈 라덴과 탈레반은 이슬람 교도를 향해 '성전'을 촉구했고 미국은 당장이라도 증거를 들이대며 공습에 나설 태세다. 장기 국지전 양상을 띨 것으로 관측되는 이번 전쟁이 일단 개시되고 나면 초점이 다시 경기 문제에 모아질 전망이다. 경기 침체 우려는 테러 이전보다 더 짙게 채색되고 있다. 국내 8월 수출이 20.1% 감소로 확정되면서 올해 수출 감소폭이 두 자릿수가 되리라는 염려가 많다. 미국 소비 위축이 반영된 9월 이후 수출 감소폭 확대 전망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월요일 뉴욕에서는 경기선행지수가 다섯달만에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예상치인 0.1% 보다 큰 0.3% 감소로 나왔다. 그러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온통 매수에 열중하고 있기도 했지만 테러가 발생하기 전인 8월 지표인 영향이 컸다. 화요일에는 향후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경기 지표와 국내 증시에 강한 진동을 몰고올 기업실적 발표가 기다리고 있다. 먼저 컨퍼런스 보드의 9월 소비자신뢰지수가 나올 예정이다. 8월 114.3에서 9월 103∼107로 악화가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의 수치를 예로 들며 지난 95년 이후 처음으로 100이 깨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앞서 테러사태 전에 조사된 미시간대학 소비자신뢰지수는 9월 83.5로 잠정 집계됐다. 8월 91.5에 비해 뚝 떨어졌으며 93년 이후 8년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대신증권 나민호 투자정보팀장은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면 단기 충격은 피할 수 없겠으나 총성이 울리는 시기를 매수시기로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경기 문제와 얽혀있는 만큼 내수관련주나 은행, 건설 등 대중주에 저가매수 기회를 포착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LG투자증권 박준범 연구원은 "폭격 후에는 막연한 전쟁 불안감은 사라지겠으나 전쟁 확산 우려가 재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등 악재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박 연구원은 "화요일 예정된 9월 소비자신뢰지수가 테러 효과를 반영하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을 예상되는 만큼 보수적인 접근이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장 종료 후에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연간 실적을 내놓는다. 8월까지 분기 손실에 대한 시장전망 평균은 주당 29센트∼31센트로 전망되고 있다. 적자 규모와 향후 전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뉴욕에 앞서 접할 국내 증시의 해석과 반응 여부가 주목된다. 현대증권 우동제 반도체팀장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실적은 D램 경기가얼마나 심각한 가를 다시 한번 주지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8월 말 분기 실적이 연간으로 발표돼 4/4분기 실적이 주는 심각성이 퇴색될 가능성도 있지만 뚜렷한 회복 시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투매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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