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움직인 책] 월 듀란트 '철학이야기'..홍사덕 <국회의원>

하고 많은 책 중에 하필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이 책을 매번 첫번째로 꼽는 데는 까닭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묵상한 끝에 나는 삶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관조와 배짱을 정했고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것을 지금껏 관철하고 있기 때문이다.당시 난 대단한 철학적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의미,신과 나와의 관계,자유의지 유뮤의 문제,내가 속한 우주의 참된 본질에 대한 의문 외에 사람들의 모듬살이 속에서 발견되는 각종 부당한 격차에 대한 분노 등이 끊임없이 나를 방황하게 했고 그 해답에 목말라하면 할수록 방황은 더욱 격렬해졌던 것이다.

나중에 사이비로 규정되거나 그런 시비에 휘말린 기독교 교파를 두군데나 파고 들기도 했고 이상하게 번역한 불경에 매달리기도 했다.책이 워낙 귀했던 시절이라 철학쪽으로 선회했을 때 유일하게 손에 잡힌 것은 박종홍 교수의 철학 개론이었는데 내 어린 생각에는 필자도 자신의 이야기를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단정했을 만큼 어렵고 요령부득이었다.

그때 홀연 나타난 게 바로 이 책이었다.

책 제목은 지금과 달리 ''철학사화(哲學史話)''였는데 동대문 고서점에서 정말 우연히 손에 넣었다.탈레스에서 존 듀이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를 포함한 철학자들의 고뇌와 해답이 너무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있었다.

놀랍게도 내가 발버둥치던 문제는 이들 역시 목숨 걸고 매달렸던 문제였고 참으로 빛나는 지혜와 논리로 제각각의 해답들을 내놓고 있는 게 아닌가.

예컨대 자유의지의 문제는 스피노자와 포이에르바하의 모색을 통해 마치 지도책을 들고 마을을 찾아가듯 내가 믿을 수 있는 결론으로 단박에 도달할 수 있었다.신의 속성,우주의 본질,그리고 공의에 어긋나지 않는 재화의 배분 방식에 이르기까지 나는 곳곳에서 지혜의 원류를 훨씬 뛰어넘는 진리를 깨우쳤고 적어도 그렇게 확신했다.

삶 자체와 삶에서 부딪친 문제에 대한 철학적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가끔 그때까지 쌓아올렸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날려보낼지도 모를 결정을 담담한 마음으로 해치울 수 있었던 것,생명과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한시도 놓치지 않은 것,그리고 니힐과 지극정성을 함께 유지할 수 있었던 것 모두 그때의 축적 덕분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과학문명이나 일상생활은 질적인 전환을 가져왔지만 난 지금도 삶의 초입에서 이와같은 단련이 필요하다고 본다.그래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우수한 청년들이 사회적 부조리에 격렬하게 저항할 때도 난 그들에게 늘 이런 당부를 했다.

''먼저 삶에 대한 철학적 배짱부터 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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