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石器 날조와 日역사왜곡..박성래 <한국외대 교수>

박성래

11월5일자 일본 신문 톱 기사는 어느 고고학자의 날조극이었다.마이니치(每日)는 1면 머리기사에서 발굴단장이 ''70만년 이전 석기를 발견했다''고 발표하기 닷새 전(10월 22일) 아침 6시18분쯤 발굴 현장에서 그 자신이 구덩이를 파고 미리 준비해온 석기를 묻었다고 폭로했다.

이 신문은 취재팀이 몰래 찍은 문제의 장면 사진들을 신문에 실었다.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50) 발굴단장은 곧 날조 사실을 실토했다.그가 발굴해 보고한 구석기시대 주거지 미야기(宮城)현의 가미다카모리(上高森) 유적은 1998년부터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도 올랐고,수많은 관광객이 일본 동북의 도시 센다이(仙台)에 가까운 이곳을 방문했다.

70만년 전부터 일본 땅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첫째로 한반도에는 그렇게 오래된 유적이 없기 때문이다.또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오랜 구석기 유적은 극히 드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류 조상의 하나로 여겨지는 베이징원인(北京原人)을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당연히 이를 조사해 온 도호쿠(東北) 구석기문화연구소와 도호쿠 복지대(福祉大) 고고학연구회의 합동조사단은 오랫 동안 일본인들의 환호 속에 매스컴을 장식했다.고교 졸업 후 독학으로 고고학을 배워 1972년부터 발굴을 시작한 그는 1981년 당시 일본 고고학 최고(最古)기록을 1만년 이상 고쳐 놓는 4만여년 전 석기를 발견했다.

그후에도 발굴할 때마다 최고기록을 갈아치워 3만년 전의 석기유적 밖에 없다던 일본에 70만년 전의 구석기 시대를 열어준 것이다.

일본 언론이 그를 ''석기의 신''이니 ''신의 손''이니 부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대학에서는 고고학을 주제로 한 국제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다.

지난해 11월1일부터 3일간,또 올해 10월28일부터 3일간 열린 회의에 한국 고고학자 두 사람이 참석,연구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국내 몇 신문은 이 사건을 해외토픽으로 다뤘다.

하지만 이것은 ''해외토픽'' 이상의 중요한 문제다.

후지모리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올해 발굴 보도된 홋카이도 신도쓰가와(北海道 新十津川)의 29점 구석기도 역시 그의 날조임을 실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초기 발굴은 거짓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고학 내지 역사학에 대한 의심이 한층 높아질 것이 걱정스럽다.

실제로 비슷한 사건은 몇년 전 우리 나라에서도 임진왜란 때의 가짜 총통 사건으로 일어난 적이 있다.

남쪽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하여 국보로 지정했던 총통이,골동품상이 만들어 바다 속에 집어 넣었다가 꺼낸 가짜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수많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 가운데 과연 ''날조된 것''이 없을 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여 소름이 끼친다.

일본이 이같은 날조를 가능하게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도 있다.

1991년 일본 아카시(明石)시는 ''아카시원인(明石原人)''축제를 시작했다.

원시인 흉내를 낸 온갖 행사가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것이다.

"수십만년 전 ''베이징원인''이 중국에서 거닐었듯이,우리 조상들이 바로 이 거리를 거닐었다"며 축제를 벌인 것이다.

아마 이 행사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축제의 기원은 60년전 1931년의 ''아카시원인론(明石原人論)''에 있다.

1931년 4월18일 아카시에서 원시인의 유골로 여겨지는 뼈 조각을 발견한 와세다(早稻田)대학의 한 교수는 그것이 ''베이징원인''이나 ''자바원인''과 비슷한,일본에 산 원인의 뼈라고 주장했다.

그의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 역사의 고대를 더 오랜 옛날로 끌어 올려 보려는 욕망이 여기에도 나타났음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축제가 계속되면,언젠가 ''아카시원인''은 역사가 돼 교과서에 오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일본 최근세사의 죄악을 덮어 두려는 소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때마침 중국과 한국에서는 일본 역사교과서를 놓고 논란하고 있다.애국심이 앞선 역사가 얼마나 날조되기 쉬운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parkstar@unitel.co.kr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