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리포트] '제조업 없는 번영' .. '황금의 60년대' 구가

제조업 없는 번영은 가능한가. 미국경제가 요즘 이 문제를 풀어 낼 실증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항공 철강 전자 등 상당수 제조업 부문이 불황의 골 속에 빠져 있는데도 전체적으로는 경기순항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1월중 고용통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동부는 11월중 26만7천명이 새로 일자리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힘입어 미국의 실업률은 완전고용에 거의 근접한 4.4%로 떨어졌다. "황금의 60년대(Golden Sixties)"를 일군 아이젠하워 시대에 버금가는 30여년 만의 최저수준이다. 미국 근로자들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에서도 높은 임금상승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월말 현재 미국인들의 평균임금이 1년 전에 비해 3.7%나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뉴스에 힘입어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지수는 지난 4일 하룻동안 1.5%나 오르면서 단숨에 9,000선을 회복했다. 미국경제의 "건재"를 믿고 싶어하는 투자자들에게 더없는 "복음"이 발표된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축배의 뒤안길에서 미국 제조업체들의 신음 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잇단 수익악화에 시달린 끝에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공장 문을 닫는 제조업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10월중 제조업 부문에서 6만1천개의 일자리가 없어진데 이어 11월에도 4만7천명의 제조업체 근로자가 퇴출당한 것으로 발표됐다. 올들어 제조업계에서 25만명분의 일자리가 순감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앞으로 제조업 경기는 더욱 전망이 어둡다는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석유업체인 엑슨과 모빌의 합병 등 거대 제조업체들간에 "탈 불황"을 겨냥한 초대형 합병이 잇달아 이뤄지고 있는게 그 반증이랄 수 있다. 이들의 합병에 따라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게 뻔하다. 이런 제조업 부진을 메워주고 있는 것이 건설 정보통신 등 서비스 산업이다. 이들의 분발에 힘입어 올들어 미국의 전체고용은 월평균 22만6천명씩 늘며쾌속항진한 것이다. 인터넷 등 첨단 정보통신과 건설 등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당분간 미국경제는 "제조업 없는 활황"을 구가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제조업이 받쳐 주지 않는 경제순항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으로 확신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경제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를 제대로 낼 수있는 곳은 제조업 분야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내에서 정부 등 공공부문을 제외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첨단기술을 개발해온 산실은 대부분 제조업체들이었다. 오늘날 정보통신 등 서비스 업체들이 활황을 구가할 수 있게 된 것은 제조업체들이 무궤도 열차나 인공위성 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쏟아낸 "기술 부산물"의 덕분인게 사실이다. 제조업계는 또 미국 근로자들에게 최고수준의 임금을 제공해온 일터이기도하다. 요즘 미국경제가 완전고용에 가까운 저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인플레 우려가없는 것은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낮은 서비스 업종에서 대부분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89년 이래 제조업에서만 76만명분의 고임금 일자리가 사라진 반면,그 이상의 "저임 서비스 직종"이 출현해 미국인들의 임금 하향 평준화를 유도했다는 얘기다. 물론 유통 금융 보험 호텔 외식 통신 인터넷 등이 차세대 유망산업인 것은틀림없다. 하지만 제조업이라는 경제의 "기관차"를 떼 내고 서비스산업 만으로 장기번영을 누린 선진국은 이제까지 하나도 없었다. 12월로 91개월째라는 기록적인 경기확장 국면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경제가 "거품"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7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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