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중진 3인,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 서기원

21세기를 앞두고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말로만 외쳐오던 문화입국의 꿈이 이제는 과연 실현될수 있을 것인가. 오늘의 난국 타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동안 개발논리에 밀려 소홀히 취급돼온 정신문화 살리기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정부의 획기적인 문화진흥책이 요구되는 가운데 제15대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서기원 의 바람을 들어봤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외래문화에 대한 반응은 배척 아니면 모방이었다. 지금도 이 두가지 경향이 서로 뒤섞이고 충돌하면서 문화적 혼란을 겪고 있다. 외국의 보다 상품화된 대중문화에 대한 반발과 배격이 만만치 않은 한편으로 선진 각국에서 유명해진 이론과 방법론등엔 속된 말로 사죽을 못쓰는 습성도 있다. 이것은 비단 문화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가장 큰 사건인 IMF구제금융 건에서도 우리의 외부 충격에 대한 반응을 잘 살펴볼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현상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문화복합체속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지도자나 권력 엘리트도 이같은 인식에서 민심을 살피고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 투표전 정책공약을 보면 모든 후보가 문화의 자율성과 개방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것은 정보화 국제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또 이른바 무한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고 한국의 위치를 확보해가기 위해선 남들의 존경을 받을수 있는 문화예술의 재창조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부문에 대한 투자증대등 물리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문화를 정치 아래에 놓고 보는 부당한 문화관을 뜯어 고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이 문화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이 좋은 음악회와 전람회장을 찾고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은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또 외교관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외국 관계자들과 담소하는 자리에서 고려청자에 관한 간단한 해설 정도는 할수 있는 지식도 있어야 한다. 우리의 배타적 태도중에 대표적인 것이 외국문화에 대한 무관심과 경시다.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다. 각기 다른 특성과 합리성이 있다. 가령 일본문화는 본디 우리 문화가 전수해준 것이며, 독창성이 없다는 따위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대중문화의 수용에 있어서도 특정국가를 배제해온 정책도 재고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외래문화를 겁낼 것도 없고 무작정 모방해서도 안된다. 신임 대통령은 금융 외환위기에 대처하느라 경황이 없을 것이다. 또 여러가지 개혁을 위해 영일이 없을 줄 안다. 모든 정책과 계획을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처리해야 하지만 최후의 결단은균형감각에 의해 판가름난다. 이 경우의 균형감각이야말로 문화예술적인 성격의 것이다. 새 대통령이 탁월한 문화감각을 갖기를 바란다. 바야흐로 다매체 특히 영상매체의 물결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여기엔 순기능도 있고 교육.문화적 측면에서 역기능도 있다. 대통령이 세부지식을 가져야할 필요는 없겠으나 판단과 통찰력은 있어야 한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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