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 이재웅 <교수>

이재웅 1995년 멕시코의 페소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한국 경제가 멕시코와는 다르다는 점을 역설했다. 올해들어 동남아 지역에서 통화위기가 발생하자 우리는 또 다시 한국 경제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경제가 그들이 당했던 금융위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과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돌이켜 볼 때 과연 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쓸데 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동남아지역의 금융위기가 우리 나라에까지 번져오는 데는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마 정보통신기술이 발달되고 각국의 금융시장이 개방화되어 국제 금융시장과 통합되었기 때문에 위기의 확산도 더욱 신속한 것이었다. 구태여 우리 경제가 그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의 환율이 당시의 멕시코나 태국에 비해 보다 신축적으로 운영되었던 점과,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우리가 그들보다 금융시장 개방을 덜 했던 점이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의 성장 물가 경상수지 등 기초 경제여건도 그들보다는 건실하다. 그래서 한동안 환투기의 공격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외환-금융 위기를 면하기에는 충분치 못했던 것같다. 우리의 대외여건은 동남아지역의 금융위기에 쉽게 전염될 만큼 취약했고,대내적으로는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사태와 금융기관들의 동반 부실화 등 금융위기의 조건이 성숙하고 있었다. 우선 대외적으로 우리 나라의 수출 및 경제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일본 엔화가 근래 약세를 지속함으로써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따라서 우리의 경상수지는 악화되었고 경기도 침체를 면치 못했다. 더구나 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폭락했을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우리의 강력한 경쟁상대국인대만 싱가포르까지도 발빠른 평가절하를 해왔다. 따라서 원화는 상당한 고평가압력을 받아왔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환율안정을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확대하는 바람에 원화의 고평가 압력을 해소시키지 못하고 공연히 외환보유고만 대폭 줄어들었다. 최근에 환투기와 자본도피가 극성을 부린 주요 원인도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환율의 신축성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멕시코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 모두 환율을 경직적으로 운영하다가 외환위기를 당했던 사실이 이것을 입증한다. 마침내 정부는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고 부족한 외환보유고를 절약하기 위해 지난주에 원화 환율의 하루 변동폭을 종래의 2.25%에서 10%로 대폭 확대하였다. 사실상 자유 변동환율제를 택하고 환율의 신축성을 크게 높임으로써 외환시장의 안정을 시도한 것이다. 한편 우리가 동남아국가들보다 자본시장 개방을 덜했던 것이 외환위기를 완화했는지, 또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점진적 개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장개방이 확대될 경우 급격한 단기자본의 국내외 유출입이 외환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외환시장의 신축성을 높이는 것이 환율안정에 도움이 된다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반드시 외환위기의 원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설사 자본시장 개방을 유보시키는 것이 외환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시장개방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우리만 지연시킬 수는 없다. 어쨌든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한 선진국들일수록 외환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가장 강조했던 것은 한국 경제의 기초여건(economic fundamental)이동남아 국가들보다 건실하다는 점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금융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기초경제여건이 우리 나라보다도 월등한 홍콩 일본 등도 금융위기에서 안전하지 않다. 따라서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은 기초경제여건에 못지 않게 금융산업의 건전성 및 정부정책의 신뢰성 등에 따르는 금융시장의 유동성문제라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금융위기를 당했던 여러 나라들과 다르다는 점이 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같다. 실제로 우리 경제 및 금융구조는 동남아국가들과 다른 점보다 오히려 유사한 측면이 더 많은 것같다. 금융산업이 낙후되었으며 정경유착으로 금융기관이 대규모의 부실자산을 안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뿐아니라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에도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금융감독 기능이 비효율적이며 기업의 재무제표, 금융관행, 정부정책 등의 투명성이 결여되어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고 외환위기를 당한 것도 마찬가지다. 마침내 한국정부도 당면한 외환-금융위기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어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구제자금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태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번째로 IMF의 법정관리를 받는 경제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점을 강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과닮은 꼴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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