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일자) 밖에서 보는 눈 안에서의 진단

외국 언론들이 잇따라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국제 금융시장에서 터무니없는 악성 루머까지 가세해 정부와 금융기관 관계자는 물론 국민 모두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주로 외국의 경제신문들이 내리고 있는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안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신랄하고 비관적이어서 일견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언론의 보도가 비관일색이다 보니 국제 금융시장에서 나도는 한국에 대한 루머 역시 흉흉할 수밖에 없다. 루머의 내용을 보면 한국이 외화자금이 부족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차관을 신청했다느니, 외환보유고가 발표와는 달리 50억달러밖에 남지않았다는 등 그럴듯한 소문이 있는가 하면 쿠데타설, 산업은행 파산임박설 등 말도 안되는 루머까지 떠돈다는 것이다. 근거없는 루머야 자연히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문제는 이같은 루머가 갖는 파괴력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최근 며칠동안 안정기미를 보이는 듯하던 국내 주식시장이 이같은 루머에 충격을 받아 연이틀 대폭락세를 보여 8일에는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다시 무너지고, 해외에서는 한국금융기관이 발행한 채권값이 폭락하는 등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자 정부와 금융관계자들이 적극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경제에 대한 불신이 쉽게 사그라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외국 언론들이 지적한 한국경제의 문제점들은 대부분 과장돼 있을 뿐더러 결코 새삼스런 것은 아니지만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정부규제, 금융의 비효율, 노동시장의 경직성, 기업의 과다부채와 과잉투자, 기술의 낙후, 환경변화에의 적응력 부족, 역동성의 상실 등은 한마디로 고비용-저효율 문제로 귀착된다. 따지고보면 지금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고통도 이 고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 따르게 마련인 통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론이나 악성루머에 신경질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그같은 평가와 소문이 나오게 된 근본원인을 우리 스스로에게서 찾아 고칠 것은 과감하게 고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언론의 보도처럼 곧 숨이 넘어갈지도 모를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다. 우리 경제는 다행히도 최근 경상수지 적자가 축소되고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데다 물가가 안정세를 유지하는 등 비교적 건실한 기초체력(fundamentals)을 보여주고 있다.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져있다고 하나 이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 및 금융시장개방을 추진할 때 어느정도의 어려움은 예상했던 만큼 크게 당황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의 체질상 외부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경제는 뭐니뭐니 해도 스스로 하기 나름에 달렸다는 경험적 교훈을 되새기면서 자신감을 갖고 차근차근 문제에 접근하는 냉철한 자세가 이런 때일수록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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