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8일자) 상황인식부터 잘못됐다

경제정책이 겉도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시된 대책의 실효성이 부족하거나 문제의 본질과 동떨어진 시책이 나올 경우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한다. 또 시기를 놓치고 시책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할 때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현실에 대한 상황인식이 잘못됐을 때이다. 지난 25일 발표된 금융시장안정대책이 금융불안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안이한 상황인식 때문이라고 우리는 판단한다. 금융기관에 대해 한은특융등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하면서 특혜성 금리는 배제하고 그것도 경영권포기각서를 포함한 자구계획을 제출한 연후에 이를 검토해서 지원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느긋한 자세가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가 곤두박질치고 연쇄부도 우려가 짙어진데다 환율과 금리가 급등하는등 외환위기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원칙에 입각한 고답적 대응이 효과를 볼것으로 생각했었는지 정책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시장기능을 중시하고 원칙을 따지는 것이 평상시라면 꼭 지켜야할 정책자세라고 보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결과에 대한 책임회피의 한 방편으로 이해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강경식 부총리를 비롯한 정부경제팀의 상황대처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라고 단정할수 밖에 없다. 특히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상황인식과 대처방안이 정부내에서도 제각각이어서 효과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점이다. 사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할 재경원과 한국은행의 협조관계가 원만한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금융 불안에 대한 중앙은행의 역할은 새삼 거론할 필요없이 중차대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보기에 한은은 금융시장안정 노력에서 무척 소극적이고 방관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재경원의 독주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믿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행여 금융감독기능분리 등 소위 중앙은행 독립문제를 둘러 싼 재경원과의 감정대립이 정책협조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게 아니냐는 걱정도 해본다. 사실이 그렇다면 기관 이기주의가 국민경제를 황폐화시키는 표본임에 틀림없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본란은 그동안 금융불안해소를 위한 정부의 강력하고도 신속한 대책마련을수차 촉구한바 있고 지난 25일의 대책에 대해서는 미흡하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예상대로 금융시장의 반응은 냉담하고 오히려 불안이 가중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정부의 과감한 정책결단을 재차 촉구하지 않을수 없다. 범정부 차원의 의견조율을 거쳐 위기상황의 본질을 명백히 인식해야 하며 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인 보완대책을 조속히 마련, 실행에 옮겨주기 바란다. 원칙대로 하겠다는 관념적 사고는 평상시에나 자켜야할 덕목이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인 우리경제에 대한 처방은 응급조치가 우선이고 체력보강은 그 다음에 해야할 일 임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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