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비취 가락지

요즘 우리 젊은 세대들은 여성의 장신구인 가락지와 반지를 같은 것으로 알기 쉽지만 가락지와 반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가락지는 두 짝 (쌍)으로 된 것이지만 반지는 한 짝으로 된 것을 일컫는다. 가락지의 "가락"이란 한 군데서 갈라져 나간 "갈래"의 뜻으로 여기에 손가락을 나타내는 지가 더해져 가락지가 됐고 반지는 한 쌍을 나눈 반이란뜻의 한자어에서 유래했다. 가락지의 유물은 조선시대 이후의 것만 발견되는데 당시 가락지는 기혼여성만 쓸 수 있었고 미혼여성은 반지를 사용했다. 이로 미뤄 볼때 가락지는 "부부일신"을 상징하는 표지가 아니었나 싶다. 또 헌종의 후궁인 경빈김씨의 "사절복색자장요람"을 보면 가락지는 계절과 옷에 따라 바꾸어 낀다고 했다. "가락지는 10월부터 정월까지 금지환을 끼고 2월과 4월은 은칠보지환을 끼고 나서 5월 단오에 견사당의를 입을 때 옥지환이나 마노지환을 끼며 8월 광사당의를 입을 때 칠보지환을 끼어 9월까지 계속한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여름엔 금가락지를 못 끼고 겨울엔 옥가락지를 못 끼게 되어 있다. 문체부는 지난 연말 매월 첫 토요일을 "한복 입는 날"로 지정하고 금년 1월15일부터 1년간 한복을 입고 국립박물관이나 고궁 등 문화유적을 찾는 입장객들에겐 무료 관람토록 했다. 그런데 어느 보석감정사가 이번 설 연휴기간인 지난 9일 오전 11시부터 한복을 입고 덕수궁을 찾은 관람객에게 1백명 선착순으로 비취가락지를 무료로 나누어 준다고 발표해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이 비취가락지를 얻기 위해 몇몇 부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고궁을 찾았고 순서를 기다리는 행렬은 순식간에 5백명을 넘어섰다. 헛걸음을 치게 된 부인들은 당연히 주최측에 항의를 했고 이를 수습하려는 주최측과 뒤엉켜 큰 소란이 벌어졌던 것이다. 주최측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사를 기획했는지 모르지만 제 철도 아닌 비취가락지를 쌍도 아닌 한짝씩 나눠주고 게다가 준비허술로 한때나마 큰 소동을 빚은 것은 딱한 일이다. 이벤트는 이벤트답게 치밀한 사전준비와 목적이 뚜렷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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