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시론] 호황과 화이트칼라 범죄..유한수 <포스코경영연>

유한수 경기호황이 지속되면서 실업률이 사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또 정부의 조세수입도 예상보다 큰 폭으로 늘어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할 정도라고 한다. 경기호황에 따라 기업들의 수지가 개선되고 있어 봉급생활자들은 실적 보너스를 기대할 수 있는등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경기호황중에 화이트칼라 범죄가 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된다. 주가조작에 관련된 증권사직원 살인사건, 재산을 노린 대학교수의 아버지 살해사건, 한국은행 직원의 지폐유출사건,국회의원과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사건등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밖에 탈세 공금횡령등 기업내부의 비리까지 포함하면 사태는 심각하다. 화이트칼라범죄는 일반 형사범과 비교해 볼때 범죄의 성격, 파급효과,범행동기등에서 다른 측면이 많다.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첫째는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범행여부는 개인적 성격에 많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범인들이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성격을 가졌을 법하다. 부도덕하거나 정신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어딘가 이상하기에 범죄를 저지른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것을 "심리적 결정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화이트칼라 범죄"라는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에드윈 서덜랜드는화이트칼라범죄에 대해선 이같은 심리적 결정주의가 타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범인들이 모두 심리적으로 정상이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멀쩡하다는 것이다. 다른 학자들도 대부분 여기에 동의에 한다. 다만 여러 조사결과를 보면 대개 자기중심적이고 과욕을 부리는 성격이 많다고 한다. 자신의 처지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꿈꾸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사귀고 싶어하는등 허영과 허세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씀씀이가 크고 투기성향이 강하다. 증권사나 한온의 직원,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날려버린 교수아들이바로 이런 유형에 해당한다. 이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두번째는 경제이론으로 범행동기를 설명하려는 학설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범인들도 무작정 행동하는게 아니며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진다고 한다. 들킬 확률을 계산하고 범행으로 얻게될 이익과 비교한다는 것이다. 위험이 클수록 일확천금을 노릴 가능성도 많다. 최근에 일어난 화이트칼라 범죄만 하더라도 우발적인 행위가 아니고 사전에치밀하게 준비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꼭 무엇을 얻기보다는 여건이 악화되어 현재 유지하는 생활수준이 위협받는 경우 이를 보상받기 위해 범행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재물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동기들은 "금전적 이기주의"라고 불린다. 경쟁문화는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경쟁문화에는 부와 성공이 개인의 지상목표가 된다. 따라서 개인이 이익을 얻기위해 투쟁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결과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대우를 받게된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자칫하면 사회적 불평등을 개인의능력 탓으로만 들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따라서 정상적 방법으로 부와 성공을 얻기 어려운 사람들은 범죄적 행위를통해 이를 얻으려는 충동을 받게 마련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과소비를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한다. 특히 승리자의 능력에 대해 칭송하는 분위기가 강할수록 패자의 아픔도 큰것이다.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는 최근 발간된 시집의 제목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먹고살만한 계층이면서 잘사는 사람에 대해 상대적 빈곤감을 느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흉악범과 비교할때 아무일도 아닌 것 처럼 생각하며 심지어 범행이 발각되어도 동정을 하는 경우마저 있다.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해주었다고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범인들이 일단 외견상 번듯하게 생긴 것도 이런 경향을 부추긴다고 한다. 이런 풍조가 만연하면 그 사회는 가치관의 혼돈을 겪게 된다. 왜 이런 분위기가 되었을까. 우리사회를 돌아 보면 근본적으로 화이트칼라의 의욕을 꺾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승자독점주의(Winner-take-all)"가 판을 치는 것이다. 부도 권력도 명예도 소수의 집단에 독점되어 있어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는 이같은 독점적 구조를 완화하는 일이다. 독점구조아래 얻은 권력과 부는 정통성을 인정받을수 없었기에 해방이후 50년간 우리는 언제나 정통성을 놓고 싸우느라 엄청난 국력을 낭비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국민화합의 정치를 부르짖고 있으나 승자독점주의 체제아래서는 화합을 이룰 수가 없다. 승자독점주의를 완화하는 방법은 역시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확립해서 이를지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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