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시론] 사법시험의 개혁..양승규 <서울대 법학교수>

"사회있는 곳에 법이 있다"는 말과 같이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평화로운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법질서가 바로 서야 한다. 민주국가는 법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이면서 법현상이 왜곡되고,사법시험과 법학교육은 서로 유리되어 운영되고 있다. 법조인의 관문이 되고 있는 사법시험은 사법시험령에 의하여 시행되고 있으나,그 응시자격은 법학교육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을 뿐아니라 학력에 대한 제한도 두고 있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람의 병을 다스리는 의사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시험에 합격하영 하나,사회병리현상을 다스려야 하는 이른바 사회의사( social doctor )는 1차,2차로 나누인 몇개의 사험과목에 대한 점수로서 그 합격 여부를 결정하고 사법연수원 과정을 거치면 된다는 것은 우리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할수 있다. 이에따라 법학계에서는 끊임없이 사법시험제도의 개선을 논의하고 법학교육과 연게시켜 이를 실시하고 그 합격자의 수도 대폭 늘려 산업사회에서 국제화 또는 세계화에 대응할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보수적인 법조계는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합격자의 수를 줄일 것을 거듭 주장하는 파행적인 현상을 보이고,오히려 변호사의 수임료를 인상한다는 발표를 함으로써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가 오늘날 총체적인 부패현상을 자아낸 것도 정치권력의 부패에만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검찰이나 사법부가 법의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법집행의 공정성 내지는 형평성을 무너뜨려 법경시의 풍조를 자아낸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수 있다. 사회가 올바로 서기 위해서는 법질서가 확립되어야 하고,무한경쟁 속에 접어들고 있는 세계무대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공정한 거래를 통해서 국위를 떨치기 위해서는 기술의 향상 못지않게 그에 상응하는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는 훌륭한 법률가의 양성이 요구되고,사법시험제도의 개혁은 필연적인 요청이라 할 것이다. 최근 언론은 정부가 사법시험 합격자의 수를 1,000여명으로 늘리고 법학교육의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그 사실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에 대한 논평을 가할수는 없으나,이것은 낡은 테를 벗지 못하고 현실에서 안주하고 있는 법조계가 스스로 그 개혁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정부에서 그 개혁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 할수도 있다.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개혁의 물결을 타고 사법부의 인적청산을 비롯하여 법조계가 다시 태어나는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기대했으나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사법시험제도의 개혁은 법학교육이나 법조계의 개혁과 맞물려 있다. 그 개혁방안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방법론이 제기될수 있으나,여기서 이를 일일이 다룰수는 없다. 대학에서 많은 비용과 인적자원을 동원하여 법학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면서 법조인을 선발하는 사법시험의 응시자격을 법학교육과 연계시키지 않음으로써 파행적인 운영을 벗어나지 못했고,시대에 부응하는 법률가의 공급에 차질을 가져왔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필자는 1972년 공화당 정권에서 사법시험령을 개정하여 학력제한을 폐지하고자 할때에 그 부당성을 지적하는 글을 법률잡지에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고도의 산업사회에서 국제적인 교류가 빈번하고 각종의 법률수요가 늘고 있는 현재까지 잘못된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합격자의 수를 가지고 서로 다투고 있음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사법시험의 개혁은 법과대학졸업자에게 그 응시자격을 부여하고 그 시험과목등을 조정하여 법학교육을 정상화하는데 기여하여야 한다. 이것은 물론 법학교육의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일부언론의 보도와 같이 우리나라와 법학교육이 전문직업인의 양성을 목표로 대학원과정에서 실시하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국민의 법감정이나 법률문화의 토양이 미국과 다른점에서 이를 선뜻 받아들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행 법학교육이 주어진 여건속에서도 교수들의 과목이기주의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반성해햐 한다. 또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법률가를 양성하기 위하여 교육연한의 연장,합리적인 교과목의 설정,교육방법등의 개선을 통해서 철저한 법학교육이 실시될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 할수있다. 사법시험제도와 법학교육의 획기적인 개혁은 시대적인 요청이고 또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그 개혁안이 비록 정부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법학계나 법조계는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우리시대와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올바른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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