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람들은 성공을 향해 도시로 몰려왔다. 그리고 다시 시골로 향해 소박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행복으로 좌표를 이동한 이들이다.
[한경 미디어 뉴스룸-MONEY] '성공' 대신 '행복'으로… 돌아온 소농의 시대
#1. 이미정 씨는 오래전부터 스스로 장을 담가 먹고 싶었다. 콩 농사부터 지어 직접 쑨 메주로 간장과 된장을 담그고 싶었다. 음식의 기본인 장류를 믿고 먹으려면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는 서울에서 강원 원주로 터전을 옮겼다. 약 1652㎡의 밭을 사 콩을 심고 감자 같은 작물과 튤립 등 구근식물도 심었다. 옆에서 시키는 대로 씨를 뿌리다가 최근엔 농업기술센터에서 기초 농업을 공부하며 소규모 친환경 농사법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친환경에는 자급자족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2. 백정림 씨는 ‘고품격 식(食) 라이프’의 기본은 좋은 식재료라고 생각한다. 제철 채소는 텃밭에서 수확하고, 과일이나 육류 해산물은 전국 곳곳의 산지에서 최고의 재료를 구한다. 장인정신으로 농사에만 집중하는 소규모 농장들을 찾아 현지 직송으로 배송받고 있다. 지리산 유기농 닭이 낳은 청란, 울진에서 조달한 갈치와 꽃게, 남해 마을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대저 토마토 등이다. 10년 넘게 단골로 거래해오며 주변 지인들과도 ‘리스트’를 공유해 생산자의 판로를 개척해주기도 한다.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은 결국 재료로 모아진다. 세계적인 식문화 선진국 사례를 볼 때 ‘미식의 끝’은 좋은 재료다. 도시 소비자들은 농산물 생산 현장을 궁금해하고 ‘생산의 결과’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 자체를 소비하려 한다.

‘얼굴 있는 농부’는 신뢰의 근거가 된다. 농부와의 교류를 통해 농사 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도시 소비자와 농촌 생산자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좁아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주로 그 통로가 된다.

‘꾸러미’는 전국에서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제품을 택배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최근엔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정기 배송 서비스)도 등장했다. 또 ‘농사 펀드’와 같은 온·오프라인(O2O) 플랫폼은 전국의 숨은 농부들과 소비자를 연결한다.

내 텃밭에 직접 심은 재료, 내 손으로 지은 농사의 가치도 떠오른다. 전국의 도시 농업은 꾸준히 성장세를 타고 있다. 그리고 텃밭에서 시작된 ‘자급’에 대한 관심은 ‘자급자족 라이프’에 대한 로망으로 이어진다.

최근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소박한 자급자족 라이프를 소재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갓 수확한 재료로 만든 따뜻한 밥 한 끼의 위로는 자급농에 대한 도시인의 열망을 자극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숲속의 작은 집’ 같은 문화 콘텐츠도 자급자족의 재발견을 다루고 있다.

서울을 떠나 시골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늘어나는 귀농 인구 중에는 젊은 세대도 적지 않다. 도시에서 시골로 귀농하는 것은 진정한 자급농의 길로 이끈다. 가족이 함께 귀농하면 가족농이 된다. 이때 짓는 농사는 행태가 조금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박대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60, 1970년대 이후 오랜 기간 관행 농법에 따라 농사를 짓는 게 보편적이었다면, 도시에서 시골로 귀농한 사람들은 상당 부분 관행 농법에서 탈피해 자연 친화적인 농사, 소규모로 건강한 방식의 농사를 짓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생태 지향적, 가치 지향적 귀농에 따른 이른바 ‘돌아온 소농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자급자족을 주목적으로 소품종 대량 생산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의 농사를 선호하며, 유기농을 포함한 친환경 농사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세계적으로도 소농(가족농) 트렌드가 있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등에서도 소농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전체적인 농가 수는 줄지만 새로운 귀농 인구로 인해 소농의 가치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농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지만, 규모로만 볼 때 1만㎡ 안팎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농사를 짓는 마음과 철학에 있다. 소유와 소비의 논리가 지배하는 도시의 삶에서 탈피해 생산과 자급을 추구하는 데서 적정 규모의 농사와 자연 친화적인 방식의 농사가 나온다.

이현주 한경머니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