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린, 간암 발생 줄인다
만성 B형 간염 환자가 아스피린 등 항혈소판제를 복용하면 간암 발생 위험이 60%가량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만성 B형 간염은 B형 간염 바이러스(HBV)에 6개월 이상 감염된 상태로 간에 만성 염증괴사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간경화, 간암 등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다.

이정훈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사진)가 이끄는 연구팀은 2002~2015년 서울대병원을 방문한 18~85세 만성 B형 간염 환자 1674명을 대상으로 아스피린, 클로피도그렐 등 항혈소판제 복용 여부와 간암 발생 위험도를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B형 간염이 간암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주는 항바이러스제 처방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

연구팀은 항혈소판제를 복용한 환자 558명과 그렇지 않은 환자 1116명을 대조해 간암 발생 위험에 차이가 있는지 장기간 추적 관찰했다. 항혈소판제를 복용하는 집단에는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을 각각 하나 혹은 둘 다 처방했다. 13년의 연구기간 동안 간암은 전체 환자 중 63명(3.8%)에게서 발생했다. 두 집단 간 간암 발생 비율을 비교하면 항혈소판제를 복용한 B형 간염 환자 집단의 간암 발생 위험도가 대조군보다 56~66% 더 낮았다.
아스피린, 간암 발생 줄인다
혈소판은 면역세포 중 하나인 ‘CD8+ T세포’ 증식을 촉진하기 때문에 면역질환과 관련이 있다. 항혈소판제는 면역세포인 T세포로 인한 염증이나 과도한 섬유증 등을 억제해 간염이 간암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준다.

아스피린이 간암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역학 연구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연구 결과를 둘러싸고 논쟁이 많았다. 미국에서 시행한 한 연구에서는 아스피린 복용이 간암 발생 위험을 41% 낮춘다는 결과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 벌인 연구에서는 관련성이 없다는 결론도 나왔다. 이 교수는 “만성 B형 간염은 우리나라에서 간암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라며 “이번 연구가 만성 B형 간염이 간암으로 진행되는 것을 획기적으로 막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다만 클로피도그렐을 복용하면 출혈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연구 결과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는 출혈 위험 변동이 없었지만 클로피도그렐만 복용하거나 아스피린과 함께 복용한 환자들은 출혈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아스피린의 경우 우려했던 출혈 위험이 크지 않으면서 간암 발생 위험을 절반 이상 낮출 수 있었다”며 “기존 항바이러스제 치료와 함께 간암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간학회(AASLD)의 공식학술지 온라인판에 지난달 게재됐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