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하루 빨리 PE를 키워야 한다
시국이 이런데 국민 스포츠인 야구까지 저 모양이다. “브루투스, 너마저”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3할 타자가 무려 40명이 넘는 리그다 보니 ‘타고투저’를 감안하더라도 방망이만큼은 믿었는데 첫 두 게임 19이닝에서 고작 1점이다. 더군다나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중심타선의 침묵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성비’ 논란까지 일으켰다. 홈구장에서 볼만 남발한 투수진도 ‘이오십보 소백보(以五十步 笑百步)’로 마찬가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몇몇 원로는 야구 위기론을 주장해 왔다. 이들이 주장하는 위기론의 핵심은 세대교체 실패다. 투수진의 경우 류현진, 김광현이 국가대표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것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다. 이후 10년 동안 이들을 대체할 변변한 선발투수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무리로 기용된 오승환이나 임창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타자 쪽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심타선인 이대호나 김태균이나 모두 1982년생이다. 부상 때문에 합류하지 못한 정근우까지 가세했다면 36세에 달하는 선수들이 야수의 3분의 1을 차지할 뻔했다. 기존 선수들의 노쇠화가 진행되는데 이를 받쳐 줄 새로운 얼굴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이 위기의 핵심이다.

세대교체의 실패, 이것은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과거 경제성장을 견인해 왔던 철강,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등 중후장대산업의 뿌리는 1972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기술(IT)산업을 육성해 주력 산업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는 중심타선이 여전히 ‘중화학’과 하드웨어 ‘IT’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들 산업의 노쇠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철강이나 석유화학공업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는 한 그런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동차는 ‘자율주행’이나 ‘전기차’의 출현 등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해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하드웨어 쪽에서 경쟁력을 갖춘 IT산업도 경쟁구도가 인공지능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쪽으로 이동하고 중국 업체들이 부상하면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제 지난 수십년간 우리 경제를 이끌어 왔던 이들 산업에서 과거와 같은 불같은 강속구를 기대하기 힘들다. 201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왕조시절을 이끌었던 브라이언 윌슨이 최근 너클볼러로 변신을 꾀하듯 기교파로 전환하든지 아니면 은퇴 수순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반면 이들을 뒤이을 새로운 세대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화장품이나 의약품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화장품의 경우 사드로 인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에 직격탄을 맞았다. 기타 벤처기업들의 성장 역시 아직 두드러진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되기에는 이른 편이다.

기업 역시 사람처럼 태어나서 죽는 건 마찬가지다. 불멸의 인간이 없듯 불멸의 기업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산업의 잉태나 퇴출을 정부가 주도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효율적 자원배분은 결국 시장의 몫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초불확실성 하의 경제시스템에서는 그런 기능을 은행에 기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은행은 채권자로 수익분포의 왼쪽 꼬리 부분만 신경쓰기 마련이다. 대출 채권만 회수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수익분포 전체를 살펴 옥석을 가려 투자를 진행하는 몫은 자본시장, 특히 사모펀드(private equity)가 해줘야 한다. 새로운 기업의 출생부터 쇠락한 기업의 ‘웰 다잉(well dying)’까지, 벤처부터 구조조정까지, 그 몫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왜 대우조선이나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을 정부가 주도하느냐고 비판하면서 시장에 맡기라고 주문한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이다. 우리나라 PE 중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을 이끌 만한 규모와 전문성을 갖춘 PE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PE산업의 육성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kcm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