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국익 위해 뚜껑 덮고 뭉치는 일본
일본어에 ‘냄새 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는 관용구가 있다. 나쁜 일이나 추문(醜聞) 등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일시적 모면책으로 감춰둔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일본에선 비판 논조가 퇴조하고 있다. 나쁜 일이나 추문은 아니지만 건전한 비판조차 뚜껑을 덮어 새나오지 못하게 짓누르는 듯하다. 특히 정부 비판이나 정치성 발언을 꺼리는 분위기다.

지난달 8일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미국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는 신체장애가 있는 뉴욕타임스 기자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모욕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 지위를 이용해 약자를 괴롭히려 한다면 우리는 모두 패배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연예인 개인이 정권 수뇌를 겨냥해 비판하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섣불리 발언했다가 미운털이 박히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연예인만이 아니고 일반인들도 비판성 발언을 삼가며 대세에 따라 처신한다. 비판을 자제하고 대세에 따르려는 습관이 배어 있다 보니 남들 앞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성인도 허다하다. 이시 히로미쓰 전 히토쓰바시대 총장은 그 원인을 “두드러지게 눈에 띄면 이지메를 당한다는 자기방어 본능이 초등학교 때부터 체득되면서 남 앞에 나서지 않으려는 습성이 몸에 배었다”는 데서 찾고 있다(《대학은 어디로 가나》 중). 단지 초등학교 때부터의 문제가 아니고 초등학교 교사들도, 또 그 교사들의 교사들도 토론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나서는 행동을 꺼리는 것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습성이다.

학문에서도 갑론을박을 통해 발전하는 사회과학보다는 논쟁의 여지가 적은 물리·화학 등의 자연과학이나 의학·생리학 분야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한국이 평화상 한 명밖에 받지 못한 노벨상을 일본은 25명이나 받았다. 일본인이 탄 노벨상을 분야별로 보면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의학·생리학상 4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 경제학상 0명이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 결과에서도 티격태격하지 않고 몰두할 수 있는 자연과학이나 의학·생리학 분야에서 두각을 보임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노벨상 수상에는 끈기 있는 팀워크도 한몫했다.

일본인은 구성원과 일체감을 이뤄 일하는 데서 보람을 찾으며 완벽성을 추구하려 한다. 열 가지 중 대부분을 좋게 평가하고 한두 가지 병폐를 지적하는 것도 껄끄러워한다. 비판할 것이 있어도 대개는 침묵하기에 의제로 등장한 사안은 ‘이의(異議) 없음’이란 만장일치 방식이 취해진다. 개인의 비판적 의견은 새어나오지 않게 되고 집단의 결정이라는 뚜껑이 덮어진다. 일본에서 다수결은 부득이할 때 활용되는 최후수단이다. 이 때문에 다수결로 정한 회의장 분위기는 떨떠름한 기운이 감돌곤 한다.

비판이나 반대 의견에 뚜껑을 덮어둔 채 전체가 뭉치면 국력(또는 집단의 추진력)은 강해질 수 있다. 반면에 개인의 비판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데, 정작 일본에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하다. 개인의 비판능력 함양보다는 국가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10일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도요타자동차 사장을 만나 사전조율했다. 도요타가 그동안 미국에서 고용창출을 해온 것을 강조하며 앞으로 닥쳐올지 모를 불이익을 피하려 한 것이다. 도요타는 영리기업이지만 아베 총리와 도요타 사장은 국익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했다. 사익을 추구했다는 ‘최순실 게이트’와는 그 사고틀이 정반대다.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