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 '승부사본색' 이글샷 앞세워 대역전극
장하나(25·비씨카드·사진)의 대역전극이었다. 19일 호주 애들레이드의 로열애들레이드GC(파73·6681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호주여자오픈(총상금 130만달러·약 15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장하나는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최종합계 10언더파 282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태극 낭자’의 올 시즌 첫 우승이다. 세계랭킹 6위 장하나는 LPGA투어 통산 4승째를 수확하며 올 시즌을 기분 좋게 출발했다.

대회장의 날씨는 맑았지만 바람이 말썽이었다. 강한 바람은 수시로 방향을 바꿔가며 선수들을 괴롭혔다. 이날 장하나는 바람을 이기려 들지 않았다. 막강한 장타력을 지녔지만 간결한 스윙으로 페어웨이를 지키는 데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1번홀(파4) 보기가 약이 됐다. 첫 홀에서 ‘예방주사’를 맞은 장하나는 집중력을 발휘해 12번홀(파3)까지 파 행진을 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타수를 잃은 가운데 악착같이 스코어를 지켰다. 경기 시간 4시간30분 중 3시간30분을 방어에 주력한 장하나는 마지막 1시간 동안 공격을 퍼부었다. 13번홀(파4)이 시작이었다. 그는 7m짜리 버디를 잡으며 잃었던 타수를 회복했다. 이어 14번홀(파4)에서도 5m 버디에 성공, 7언더파로 단독 2위에 올라섰다. 9언더파로 선두를 달리던 리젯 살라스(미국)에 2타차로 따라붙었다. 14번홀은 전장이 380m로 파4홀 중 길이가 가장 길다. 그만큼 공략이 어려워 대부분의 선수들이 파 세이브 작전을 쓰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2홀 연속 버디를 성공시킨 장하나는 주먹을 흔들며 자신감을 충전했다.

15번홀(파5)에선 2m짜리 버디를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상승세가 꺾일 수 있는 위기였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파로 마무리한 장하나는 여유 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16번홀(파3)을 파로 막은 장하나의 역전극은 17번홀(파5)에서 일어났다. 앞서 경기를 하던 살라스가 연이은 보기로 타수를 잃으며 6언더파, 공동 2위로 내려왔다. 이때 세컨드 샷으로 그린 위에 공을 올린 장하나는 14m짜리 장거리 이글 퍼팅을 시도했다. 공은 힘차게 굴러가 컵에 떨어졌다. 묘기 같은 퍼팅 성공에 장하나와 갤러리들 모두 환호했다. 살라스의 실수로 1타차 단독 선두로 올라선 장하나는 이글 성공으로 단숨에 3타차 선두가 됐다.

마지막 18번홀(파4)에서도 장하나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세컨드 샷으로 컵 바로 옆에 공을 붙여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탭인 버디에 성공한 뒤 두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의 올 시즌 첫 우승을 축하했다. 장하나는 우승 직후 “대회 첫째 날 성적이 좋지 않아 스스로에게 ‘힘을 빼고 편안하게 치자’고 다짐했다”며 “그 결과가 좋아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경기 중반까지 우승을 넘봤던 세계랭킹 2위 에리야 쭈타누깐과 폰아농 펫람(볼빅) 등 태국 선수들은 장하나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쭈타누깐은 호주 동포 이민지, 일본의 노무라 하루(한국명 문민경·25) 등과 함께 6언더파 286타로 공동 3위에 올랐다.

장하나는 이번 우승으로 LPGA 통산 4승을 거뒀다. 그는 최근 새로 호흡을 맞춘 ‘명품 캐디’ 제이슨 해밀턴(호주)의 덕을 톡톡히 봤다. 호주 출신인 그는 장하나가 이 골프장에 대비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20·뉴질랜드)가 LPGA투어에서 10승을 올리는 데 합작한 캐디다.

캐디와 클럽, 스윙코치 등을 모두 바꾼 리디아 고는 이날 2타를 잃어 최종합계 2오버파 294타로 전날보다 11계단 떨어진 공동 46위에 그쳤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