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구 투자의 힘'…일본, 22번째 과학분야 노벨상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71)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됨에 따라 일본은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오스미 교수는 세포가 스스로 단백질 등을 분해하는 ‘오토파지(autophagy·자가포식)’ 구조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본은 지금까지 생리의학상 부문에서만 네 번째 수상자를 배출했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포함하면 수상자는 25명으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22명이 자연과학 분야 수상자다. 자신의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장인정신과 기업, 정부 지원이 노벨상 강국 일본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불필요한 세포 자가포식 원리 발견

'기초연구 투자의 힘'…일본, 22번째 과학분야 노벨상
1945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오스미 교수는 1967년 도쿄대 교양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록펠러대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세포가 불필요한 소기관을 잡아먹으며 에너지를 내는 현상인 오토파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1988년 광학현미경으로 오토파지 현상을 확인했으며, 1992년 효모를 통해 이 현상이 나타나는 원리와 원인 등을 확인하고 논문으로 발표했다. 50년 동안 외길을 걸어와 ‘오토파지의 아버지’로 불린다.

인체는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죽은 세포는 없애고 살아 있는 세포는 에너지를 활발히 내도록 한다. 백혈구 등 면역세포 속 병원균 등을 분해하는 포식작용과 자식작용은 자가 세포의 파편을 제거하고 생명체를 유지·발달시키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오스미 교수 연구는 각종 질환 연구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헌팅턴병이나 파킨슨병, 암, 치매 등 각종 신경질환이 있는 사람은 자식작용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같은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2006년 일본학사원상, 2012년 교토상에 이어 지난해 캐나다의 세계적 의학상인 ‘가드너 국제상’을 받았다. 오스미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나처럼 기초 생물학을 계속해 온 사람이 이런 식으로 평가를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젊은 사람들에게는, 과학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14년 만에 일본인 3년 연속 수상

일본은 2014년 아마노 히로시 나고야대 교수를 포함해 세 명이 물리학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는 생리의학과 물리학에서 수상자가 동시에 나왔다. 올해 오스미 교수가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3년 연속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게 됐다. 미국 국적을 취득한 수상자까지 포함하면 일본인이 3년 연속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이후 14년 만이다.

톰슨로이터가 최근 발표한 올해 노벨 과학상 후보 24명 가운데 세 명의 일본인이 포함되면서 일찌감치 일본은 수상자 선정을 예고했다. 오스미 교수는 톰슨로이터가 선정한 후보 명단에선 빠졌지만 일본 언론은 면역 분야에서 세계 최강이라며 혼조 다스쿠 교토대 교수, 오스미 교수 등의 수상을 점쳤다. 노벨 생리의학상에 이어 물리학상, 화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문학상이 차례로 발표된다. 수상자에게는 800만크로네(약 11억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일본에서는 마에다 히로시 소조대 특임교수와 마쓰무라 야스히로 국립암연구센터 신약개발부문장이 5일 발표되는 화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장인정신과 지원의 조화

일본이 역대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된 것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 분야에 매달려 한우물을 파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이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도 노벨상 강국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기업과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고미야마 히로시 미쓰비시종합연구소 이사장은 “일본 노벨상의 비결은 기업들이 기초연구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들은 2014년 일본 과학기술 연구비 18조9700억엔(약 190조원)의 70%를 웃도는 13조5800억엔을 투자했다.

한국도 기초연구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100년 먼저 현대과학을 접한 일본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연구개발(R&D)비 중 22.6%(4조3000억원)를 대학에 투자했지만 노벨상이 나올 수 있는 연구자 주도의 자율 연구에 들어가는 예산은 1조1000억원에 불과하다.

도쿄=서정환 특파원/박근태/이지현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