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3일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한진해운 관련 물류대책 당정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임종룡 금융위원장, 왼쪽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연합뉴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3일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한진해운 관련 물류대책 당정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임종룡 금융위원장, 왼쪽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연합뉴스
한진해운이 한숨 돌리게 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이 13일 각각 400억원과 100억원을 사재 출연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당장 시급한 하역비 등에 이 돈을 쓸 계획이다. 하지만 이 자금만으로는 물류대란을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진해운이 내야 할 각종 연체료(6100억원)는 물론 법원이 물류대란 해소에 필요하다고 추산한 최소 비용(1700억원)에도 한참 모자란다. 어떤 형태로든 추가 ‘자금 수혈’이 이뤄지지 않으면 물류대란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안 풀리는 물류대란

한진가 500억 내놨지만…추가 '자금 수혈' 없으면 물류대란 장기화
지난 10일 미국 법원의 ‘압류 금지(stay order)’ 조치로 풀리는 듯했던 한진해운 사태가 다시 나빠지고 있다. 한진해운에 따르면 13일 오후 6시 현재 압류, 입출항 거부 등으로 운항이 중단된 이 회사 선박은 총 94척에 달한다. 하루 전보다 1척 늘었다. 컨테이너선은 보유 선박 97척 중 78척의 발이 묶였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운항 중단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추석 연휴에도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물류대란을 풀려면 각국 법원의 압류 금지 조치와 한진해운의 연체료 납부가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둘 다 지지부진하다. 한진해운이 현재까지 압류 금지 결정을 받아낸 국가는 주요 기항지가 있는 43개국 중 미국, 일본, 영국뿐이다. 싱가포르로부터는 임시 승인만 얻은 상태다. 정부가 미국, 싱가포르와 함께 ‘세이프티 존(거점항만)’으로 정한 독일에는 아직 신청서조차 못 냈다.

자금 확보는 더디다. 한진해운이 밀린 연체료는 총 6100억원에 달한다. 선박 임차료(용선료) 2400억원, 유류비 2200억원, 장비 임차료 1000억원, 유류비 500억원 등이다. 이 중 법원이 물류비용 해소에 필요하다고 추산한 최소 금액은 1700억원이다. 바다에 떠 있는 선박을 거점 항만으로 옮겨 하역 작업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늘어날 수도 있다.

반면 한진해운이 현재까지 추가로 확보한 자금은 조 회장이 낸 400억원과 최 회장이 낸 100억을 합쳐 500억원뿐이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컨테이너선의 운항 중단을 푸는 게 중요한데 어차피 78척을 한 번에 풀 수는 없다”며 “돈이 조금밖에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 급한 곳부터 하역 작업을 벌이고, 밀린 대금도 얼마나 지원할지를 두고 협상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불투명해진 대한항공 600억원 지원

추가 자금 투입이 필요하지만 한진해운 대주주인 대한항공이 내기로 한 600억원은 실제 집행이 이뤄질지 불확실하다. 한진그룹은 조 회장의 사재 출연과 함께 대한항공을 통해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지난 10일 이사회에서 ‘조건부 지원’을 의결했다. 한진해운이 지분 54%를 보유한 미국 롱비치터미널(TTI)을 담보로 잡는 조건으로 600억원을 빌려주기로 한 것.

문제는 롱비치터미널에는 이미 6개 해외 금융사 담보가 걸려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이 추가로 담보를 잡으려면 이들 금융사가 동의해줘야 한다. 롱비치터미널 2대 주주인 세계 2위 해운사 스위스 MSC(지분 46%)의 동의도 구해야 한다. MSC는 한진해운이 롱비치터미널 지분을 팔 경우 우선매수권을 갖고 있다. 한진해운은 아직까지 이들 금융사나 MSC에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가 글로벌 물류업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먹는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한진해운의 최대 용선주인 캐나다 선박업체 시스팬의 게리 왕 최고경영자(CEO)는 13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한진해운 사태의 파장은 미국 리먼브러더스 붕괴가 전 세계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에 견줄 수 있다”며 “거대한 핵폭탄으로 세계화의 이정표인 공급 사슬을 흔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