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세계 강남점 헤아 매장, 신세계백화점 제공
사진=신세계 강남점 헤아 매장, 신세계백화점 제공
[삼불남의 시대]
① 이태백과 사오정 사이, '삼불남'의 출현
② 30대 남성 사로잡은 '작은 사치'의 위안
③ "남처럼 말고, 나 혼자 재미있게 살게요"
④ 수입차 고집하는 30대男…"내 집은 포기, 차에 올인"
⑤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민다…"난 소중하니까요"
⑥ "나만 사용하면 돼"…좁은 공간, 1인용 가전이면 OK
⑦ 주말엔 소개팅 대신 동호회…"30대 남자 마감입니다"

[ 오정민 기자 ] 30대 직장인 김진용 씨(가명)는 한 달에 한 번 퇴근길에 서울 반포동 신세계강남점 바버숍(이발소) 헤아(HERR)를 찾는다. 기본 커트와 습식 면도 서비스를 받는 데 드는 비용은 6만원.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직장인 퇴근 무렵인 7시 헤아의 예약 리스트는 항상 만원이다.

정광령 이발사는 "예약제로 운영되는 만큼 충분한 상담을 통해 고객의 직업과 개성에 맞춰 토탈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며 "퇴근 후 찾는 직장인이 많고 대부분 예약이 차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3년 말 서울 한남동에 첫 점포를 연 헤아는 최근 3년 새 매장을 5곳으로 늘렸다. 본점 기준 가격은 기본 커트 7만7000원, 염색은 18만7000원에 달하지만 서비스에 만족한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에 롯데 본점·신세계 강남점 등 백화점과 포시즌스호텔이 헤아에 손을 내밀어 '숍인숍' 형태로 지점을 늘려나갔다.

자신의 패션과 미용에 투자하는 남성인 '그루밍족'이 늘면서 유통기업들이 남성 스타일을 제공하는 전문 쇼핑공간을 마련하고 나선 것이다.

헤아 매장이 속한 신세계 강남점의 '멘즈 살롱'이 대표적인 예다. 6~7층에 걸쳐 6446㎡(약 2000평) 규모로 펼쳐진 공간에 남성 패션·취미 관련 물품을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는 그루밍족의 천국이다.
사진=신세계 제공
사진=신세계 제공
유통가는 구매력이 높아진 남성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단순한 상품력 강화에 그치지 않고 체험형 쇼핑 매장을 늘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실제로 백화점 등 유통채널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의 고객 3명 중 1명(33.1%)이 남성이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의 경우 최근 3년간 대형 할인행사를 찾는 남성 고객수 증가율(17.8%)이 여성(8.1%)의 2배를 웃돌았다.

손문국 신세계백화점 패션담당 상무는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쇼핑과 패션의 주체가 서서히 남성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경제력을 갖춘 30대 남성들이 결혼까지 늦추면서 본인을 가꾸는 등 백화점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각 패션기업들도 남성을 위한 복합 패션 공간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 서울 한남동 꼼데가르송길에 '남성 문화의 새 랜드마크'를 표방하는 편집 매장 '란스미어' 2호점을 냈다. 잡화 브랜드 루이까또즈도 28~38세 남성을 대상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루이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남성, 특히 30대 남성의 소비 경향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남성들은 내 집 마련, 노후준비 등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최근 들어 본인에게 투자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경기가 어려워졌지만 1인 가구 및 개인주의 경향 확산으로 남성이 본인에게 지출하는 금액은 역설적으로 많아졌다"며 "주택 구매, 가족 부양 등의 부담을 기피하면서 자신에게 투자하는 금액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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