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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블랙박스

입력 2016-07-20 18:10:47 | 수정 2016-07-21 00:10:15 | 지면정보 2016-07-21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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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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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black box)의 역사는 60년에 불과하다. 1956년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워런이 항공기 고도와 속도를 금속 테이프에 기록하는 비행자료기록장치를 발명한 게 시초다. 여기에 조종실 음성기록장치를 추가했고, 1958년 영국 항공사가 이를 채택했다. 이후 모든 비행기는 꼬리에 블랙박스를 달게 됐다.

‘검은 상자’라는 이름과 달리 색깔은 오렌지다. 어디서든 눈에 잘 띄도록 야광페인트로 칠했다. 원래 블랙박스라는 단어는 ‘작동원리를 모르더라도 결과는 알 수 있게 만든 장치’를 뜻하는 물리학 용어다. 항공사고 분석에 유용하다고 해서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블랙박스는 선박에도 있다. 1994년 에스토니아호가 침몰한 뒤 등장했다.

차량용은 2000년대에야 대중화했다. 종류는 크게 두 가지. 페달이나 핸들 조작, 속도 등에 관한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하는 ‘EDR(event data recorder)’은 자동차 회사가 제조 과정에서 미리 장착한다. 이 기록은 제조사의 도움 없이 열람하거나 분석하기 어렵다. 대신 운전자가 차 안의 백미러 근처나 대시 보드에 설치하는 동영상 카메라(대시캠)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차량 블랙박스라면 대부분 이를 의미한다.

요즘은 차량 전후방뿐만 아니라 360도까지 촬영할 수 있다. CCTV처럼 객관적인 데이터를 동영상으로 저장할 수 있기에 사고 때 과실 여부를 판별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그래서 보험사는 블랙박스 장착 차량에 할인 혜택을 준다. 블랙박스 데이터를 꼭 보여줄 의무는 없지만 할인을 받는 경우엔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어쨌든 교통사고 원인을 가리는 데는 이만한 증거가 없다.

엊그제 40명 이상 사상자를 낸 ‘봉평 6중 추돌사고’의 버스 운전자 허위 진술을 밝혀낸 것도 주변 차량의 블랙박스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형차량에 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설치해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사고 발생 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속도로 대형버스 사고가 2012년 96건(사상자 587명)에서 2014년 149건(사상자 780명)으로 64% 늘어난 상황에서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차량의 블랙박스 장착 의무 규정은 없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벌써 자율주행차의 블랙박스 의무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얼마 전 미국의 테슬라 자동차 인명사고 후 나온 조치다. 최근엔 블랙박스가 방범용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CCTV 한 대 값에 40개를 설치할 수 있다니 활용도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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