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자살' 50여일 만에 뒷북 감찰나선 대검
“자살한 김홍영 검사의 상사였던 K부장검사를 감사할 계획은 없습니다. 이 일로 가장 힘든 사람 중 한 명이 부장검사일 겁니다.”

기자가 지난달 1일 ‘검사 자살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에 착수했느냐고 묻자 대검찰청이 내놓은 답변이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소속 김 검사(33세)는 지난 5월19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검은 김 검사가 남긴 ‘유서’를 이유로 댔다. 유서에 상사를 원망하는 내용은 없고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고충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었다. 대검 관계자는 “유서에 내용도 없는데 K부장검사를 따로 불러 조사하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업무량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전국 검사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랬던 검찰이 한 달여 만에 태도를 180도 바꿨다. 대검은 김 검사가 상급자의 폭언·폭행에 시달렸다는 의혹에 대해 공식 감찰에 착수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대검은 김수남 검찰총장이 지난 8일 사건 내용을 보고받은 뒤 “유족과 언론이 제기한 모든 의혹을 원점에서 철저히 조사해 폭언·폭행이 있었는지 여부를 명백히 하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라”고 대검 감찰본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지난주 상경한 김 검사의 유족을 면담한 데 이어 10일에는 부산까지 내려가 유족을 방문해 사건을 조사하는 ‘성의’를 보였다. 김 검사의 어머니 이모씨가 “아들이 죽은 지 두 달이 다 돼가는데 검찰에선 연락조차 없다”고 가슴을 치며 기자회견을 한 뒤였다. 대검은 “김 검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밝힌 각종 의혹과 언론이 보도한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자 해당 검사실 직원, 동료 검사 및 연수원 동기 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도 했다.

늦었지만 합당한 조치다. 그러나 뒷맛은 여전히 씁쓸하다. 김 검사가 세상을 뜬 지 50여일 만에 여론에 등 떠밀려 나온 조치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던 검찰은 유족들이 청와대 등에 탄원서를 내고 김 검사의 사법연수원 41기 동기들이 상급자 폭행·폭언의 추가 증거를 내놓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뒤늦게 진상 파악에 나섰다. 지금이라도 철저한 조사와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통해 검찰 조직 내 남아있을지 모르는 구태(舊態)와 악습을 걷어내는 게 김 검사가 검찰에 남기고 간 과제다.

김인선 지식사회부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