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말 한마디로…삼성 브랜드가치 10배로
1996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그룹 임원들을 서울 한남동 승지원으로 불렀다. 여기서 이 회장은 “C급인 삼성의 이미지를 A급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이 체계적인 전략을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끌어올린 출발점이다.

글로벌 브랜드전략업체 인터브랜드는 삼성의 브랜드 전략 추진 만 20년을 맞아 지난 27일 관련 분석을 내놨다. “일관된 브랜드 전략을 통해 중저가 제품을 파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고급 브랜드로 올라섰다”는 평가다. 지역에 상관 없이 일관된 브랜드 전략,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하고 끊임없는 시도, 경영진 이하 임직원의 해당 전략 이해 등이 비결이라고 봤다.

인터브랜드가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산정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52억달러에서 453억달러로 8배 이상으로 뛰었다. 순위도 43위에서 7위로 올라섰다. 인터브랜드는 “1996년 이후 가치를 환산하면 10배 늘었을 수 있다”며 “15년간 꾸준히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 곳은 세계 100대 기업 중 삼성이 유일하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이 지시한 이듬해 삼성은 브랜드 전략을 전반적으로 정비했다. 글로벌 마케팅 조직을 신설하고 선진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해외 법인별로 제각각 활용하던 광고대행사도 하나로 통합해 세계 소비자에게 동일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올림픽 파트너십을 맺고 휴대폰 등 첨단 무선기기에 강점을 가진 회사라는 것을 세계 소비자에게 인식시켰다.

핵심 인재를 영입하고 관련 투자에도 적극 나섰다. S급 인재로 영입돼 1999년부터 5년간 해외 마케팅을 담당한 김병국 전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부사장은 윤종용 당시 부회장 등 그룹 수뇌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200여개 국가에서 100억달러를 들여 브랜드 영향력 제고 및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최근 가장 큰 변화로는 2011년 TV의 파브, 에어컨의 하우젠 등 상품 브랜드를 없애고 삼성 브랜드로 통합한 것이다. 인터브랜드는 “삼성이라는 ‘마스터 브랜드’에 누적되는 자산을 늘리고 삼성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각기 다른 이미지를 연상할 가능성을 줄였다”고 평가했다.

국내 직원만 20만명이 넘는 삼성 직원들이 일관성 있는 방침에 따라 브랜드를 사용하도록 하고 틈날 때마다 브랜드 전략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것도 중요한 강점이다. 삼성이 직원들에게 교육하는 브랜드 사용 가이드라인에는 광고 등에서 삼성 브랜드가 언급되는 횟수와 삼성 로고의 크기 및 위치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터브랜드는 “브랜드 가이드라인이 세계 어느 기업보다 자세하다”며 “직원들을 브랜드 홍보대사로 선정해 브랜드 관련 소식을 내부에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인프라도 구축했다”고 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