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글쓰는 고통에 눈뜬 아담이 묻는다…19살 그대는 무엇을 가지려 하나?
장정일은 1980년대의 천재

세대마다 자신들이 인정하는 천재가 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우리들을 위축시킨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장정일이다. 1987년, 눈을 반짝이며 소설개론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 장정일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된 중졸 학력의 25세, 대학 신입생을 기죽이기에 충분한 뉴스였다.

이듬해 시집 《길 안에서 택시잡기》로 돌풍을 이어가더니 급기야 단편소설까지 발표했다. 여세를 몰아 2년 뒤 출간한 중편소설이 바로 《아담이 눈뜰 때》이다. 이 소설은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로 시작해 동일한 문장으로 끝맺는다.

타자기는 노트북, 카세트 라디오는 휴대폰으로 바뀌어 여전히 요즘 청소년들의 구미를 당긴다. 뭉크의 그림이라면 다들 인터넷으로 검색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아담이 세 가지 물건을 어떤 경로를 통해 갖게 되는지를 그리고 있다. 출간 당시 ‘불온하다’는 눈총을 받은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문학사적으로 의미 있는 성장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놀라운 것은 26년 전 소설 속 상황이 지금과 너무 닮았다는 점이다. 첫사랑 은선이 붙여준 이름 ‘아담’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학에 떨어진 바로 다음날 재수학원에 등록한다. 고교시절 이름난 문사였던 아담은 대학에 합격한 은선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청소부 어머니의 희망인 우등생 형이 미국 유학을 떠나자 재수학원을 그만두어 버린다.

나를 흔드는 사춘기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글쓰는 고통에 눈뜬 아담이 묻는다…19살 그대는 무엇을 가지려 하나?
시립도서관에서 온갖 종류의 인쇄물을 탐독하고 호프집과 디스코홀에 다니다가 현재라는 고3 여고생과 사귀게 된다. 공부에 짓눌려 결석을 밥 먹듯 하는 현재는 술집에 나가는 일까지 감행한다. 공부를 팽개친 재수생과 고등학교 3학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10대의 이상 열기가 아슬아슬 펼쳐진다. 88올림픽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상황을 논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옮겨가는 세대와 불합리한 정치상황, 도래하는 정보화 시대를 불안해하는 둘은 일탈과 음악으로 위안을 얻는다.

아담이 첫 번째로 갖게 된 것은 뭉크화집이다. 30대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뭉크화집을 얻어 ‘조금은 참담해진 마음’으로 그 집을 나온다. ‘부끄러운 내 마음을 훔쳐보듯이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그림 ‘사춘기’가 있는 페이지를 열었으나 이미 찢겨 나가고 없다. 사춘기를 도둑맞은 기분으로 매일 오디오점 앞에서 턴테이블을 구경하는 아담. 최고급 오디오만 취급하는 그 가게의 문을 열고 나온 중년 남성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인한다. 남자는 아담 앞에서 풍부한 음악 지식을 쏟아놓더니 급기야 “나와 하룻밤을 보내준다면 턴테이블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열아홉 살 아담은 동성애자 아저씨를 따라가서 역겨운 일을 당한 뒤 두 번째 소원을 이룬다.

다음날 턴테이블을 무릎에 안은 아담을 자동차로 데려다 주던 동성애자는 지나가는 어린아이들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남자는 아담을 내려주면서 “앰프가 필요할 거야. 생각 있으면 오라고”라고 유혹하지만 아담은 ‘미친 자식’이라고 욕하며 다시 가지 않는다.

찾았던 낙원은 가짜

요즘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 소수자 인권에 집중하면서 관계를 아름답거나 아련하게 묘사하는 데 반해 이 소설은 비정상적인 관계의 위험을 피하지 않고 그린다. 《아담이 눈뜰 때》가 눈총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껄끄러운 문제를 비껴가지 않고 정면에서 노골적으로 거론하기 때문’이다. 어린 친구들을 돈으로 유혹해 성정체성 혼란을 야기시키는, 예측 가능한 위험을 제대로 전하는 작품을 만나기 힘든 시절이다. 대학에 가기 힘들 거라는 고민을 털어놓던 현재는 아담이 ‘오싹하고 불안한 과정’을 거쳐 턴테이블을 얻은 걸 알고 “너는 아주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현재는 올림픽이 끝난 다음날 저녁 자신이 자주 다니던 디스코클럽 10층 유리창을 깨고 뛰어 내린다.

현재의 죽음 앞에서 실컷 울며 가짜 낙원에 절망한 아담은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대학에 합격해 청소부 어머니가 마련해준 등록금을 들고 서울로 온 아담은 갈등을 느낀다. 결국 마감일에 등록하지 않고 그 돈으로 타자기를 산 뒤 ‘문장을 쓰는 일에서 나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창조의 아픔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고통은 가짜 낙원을 단호히 내뿌리치고 잃었던 낙원, 실재, 진리를 되찾는 데 쓰이는 아픔이다’고 읊조린다.

《아담이 눈뜰 때》는 세상이 26년 전보다 훨씬 위험하고 혼탁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소설이다. 열아홉, 과연 무엇을 갖고 싶은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유혹적이고 중독적인 세상 한가운데 서 있는 우리에게 아담이 묻고 있다.

이근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