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 "20여년 만에 소리꾼으로 무대 오릅니다"
“소리꾼으로 관객 앞에 서는 것이 영화 ‘서편제’에서 유봉 역을 맡은 이후 20여년 만입니다. 떨리지만 공연이 참 기다려져요.”

오는 19~20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판소리 ‘금수궁가’를 공연하는 연극인 김명곤 씨(64·사진)는 이렇게 말했다. ‘금수궁가’는 그가 1988년 선보인 창작 판소리를 근 30년 만에 다듬어 올리는 공연이다. 고전 판소리 ‘수궁가’를 바탕으로 직접 각본을 쓰고 작창했다. 지난 4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서편제 이후 국립극장장과 문화부 장관 등으로 일하다 보니 판소리를 선보일 기회가 없었어요. 지난해 무대로 돌아와보니 관객에게 제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문 소리꾼은 아니지만 (노래하지 않으면) 10여년간 소리를 배운 세월이 서운해져서요. 요즘 연습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대학 3년 때 판소리를 배우던 친구와 함께 김제국악원에 놀러갔다가 판소리에 매료됐다. 1년여간 판소리 레코드를 들으며 혼자 흉내내다 우연히 박초월 명창의 판소리학원을 보고는 홀리듯 들어갔다. 이후 10년간 박 명창의 집에서 가정교사 일을 하며 소리를 익혔다.

“수궁가는 박 명창의 인간문화재 보유 종목이었습니다. 제가 전수조교로 전판을 배운 뒤 반복 연습하던 중인 1983년 스승님이 세상을 떠났죠. 판소리 전문은 아니지만 소리를 정식으로 배웠으니 시대에 맞는 연극이나 영화로 확장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 뼈대는 고전과 같지만 시대상을 반영해 내용을 다듬었다. 용왕과 호랑이는 욕심 많은 권력자, 자라는 출세욕이 강한 말단 공무원, 토끼는 서민으로 표현했다. 용궁의 물고기 대신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고위공무원으로 바꿨다. 새로운 이야기도 추가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육지로 돌아온 토끼는 산속 호랑이의 폭정을 보게 되고,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 꾀를 짜낸다.

“수궁가는 동물 우화이므로 시대 배경에서 자유롭습니다. ‘춘향가’의 춘향을 21세기 남원에 사는 젊은 아가씨로 표현하려면 이야기의 세부 설정 중 많은 부분을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토끼와 자라 이야기는 달라요. 판소리 원형의 음악적 아름다움은 최대한 살리고, 나머지를 현대화하기에 적격이죠.”

고전을 고친 1988년대 작품을 2016년으로 옮겨와도 자연스러운 이유다. 기존 가사를 요즘 이야기로 바꿨다. 원래 토끼가 위기를 넘겼다고 자랑하는 대목에는 ‘신출귀몰 제갈량’ ‘운주결승 장자방’이 나오지만 이번에는 ‘천재기사 이세돌’ ‘인공지능 알파고’가 나오는 식이다.

“잔치 때도 ‘신식’으로 풍악을 울립니다. 토끼의 진도아리랑과 함께 전자오르간과 전자기타 소리 흉내가 나오거든요.”

초연 때는 혼자 공연했지만 이번에는 젊은 소리꾼 두 명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판소리 네 마당 중 첫 번째와 네 번째 마당을 김씨가 노래한다. 두 번째 마당은 안이호 씨, 세 번째 마당은 박자희 씨가 부른다. 함께 무대에 서는 대목도 있다. 수궁에서 육지를 배경으로 마당이 바뀔 때 세 소리꾼이 뱃노래를 합창하고, 만담을 나눌 때도 서로 말장난을 주고받는다. “소리꾼끼리 자유롭게 장면을 들락날락하는 실험적 형식으로 재미를 주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차세대 소리꾼과 함께 이전보다 더 젊어지고, 오늘날 정서를 풍부하게 담아낸 공연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든 편한 마음으로 한바탕 신나게 웃을 수 있는 풍자극을 펼칠 겁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