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동원 31호가 인도양 어장을 향해 떠나기 전 출어식에서 김재철 회장(당시 35세) .
1969년 동원 31호가 인도양 어장을 향해 떠나기 전 출어식에서 김재철 회장(당시 35세) .
1958년 1월22일 오후 6시. 부산수산대 졸업을 앞둔 24세의 한 청년은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 위에 있었다. 참치잡이를 위해 남태평양 사모아로 출항하는 순간이었다. 어업조합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대신 원양어선을 타려는 청년에게 지인들은 “죽으러 가는 것”이라며 말렸지만, “이 기회가 인생을 바꿀 것”이라는 그의 도전정신을 꺾을 수는 없었다.

2년 뒤 청년은 지남2호 선장이 됐다. 매일 꼼꼼히 적어온 항해·조업일지를 분석해 그만의 방식으로 어로를 찾았다. 1960~1970년대 사모아 등 참치어장에서 그는 ‘캡틴 김’으로 통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이야기다.

'한국 원양어업의 개척자'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평전  발간
김 회장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김재철 평전-파도를 헤쳐온 삶과 사업이야기》(21세기북스·사진)가 24일 출간됐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이 김 회장을 1년간 밀착 취재해 김 회장의 일대기와 기업가 정신 등을 800여쪽에 담아냈다.

김 회장이 처음 원양어선을 탈 때 품은 도전정신은 그가 사업을 확장할 때마다 큰 힘이 됐다. 원양어업을 하던 경쟁사들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 직접 참치통조림을 만드는 식품회사를 설립해 한 단계 도약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한 뒤에는 금융업에 눈을 떴다. 김 회장은 회사 유보금 50억원을 투자해 증권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투자금융지주라는 대형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김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장보고다. 청해진을 설치해 중국, 일본은 물론 페르시아와 동남아시아 상인들과도 거래한 장보고를 그는 한국 최초의 ‘해양 비즈니스맨’으로 꼽는다. 그는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를 설립하고 장보고의 일대기를 재조명하는 등 ‘장보고 정신’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세계지도를 거꾸로 보라”고 한다.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끝에 매달려 있는 반도 국가가 아니라 바다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출발점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삶에 대한 초연한 자세도 강조한다. 파도가 덮쳐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순간을 수차례 경험한 김 회장은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이후의 내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산행정 효율화를 위해 해양수산부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고, 무역협회장을 맡으며 협회의 개혁을 이끄는 등 공익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추천사를 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이 평전은 한 개인이 아니라 처음으로 바다를 발견하고 그 넓은 세계로 뛰어든 한국 현대산업사에 바치는 오마주(경의)”라고 평가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