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가 서울 대현동 캠퍼스 인근의 빈 점포들을 임차해 학생 창업의 전진기지로 조성한다. 창업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창업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이화여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52번가’ 조성 프로젝트다. 상권 쇠퇴로 공실률이 70%에 달하는 정문 오른쪽에서 두 번째 골목이 그 무대다. 52번가 명칭은 이화여대의 도로명 주소인 이화여대길 52에서 따왔다. 학생에겐 창업의 기회를, 유동인구 감소로 운영난에 처한 지역 상인에겐 상권 활성화로 희망을 주겠다는 구상이다.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 오른쪽에서 두 번째 골목이 10일 손님이 없어 한적하다. 대부분의 점포가 임차인 없이 텅 비어 있다. 마지혜 기자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 오른쪽에서 두 번째 골목이 10일 손님이 없어 한적하다. 대부분의 점포가 임차인 없이 텅 비어 있다. 마지혜 기자
이화여대는 이 같은 내용의 프로젝트를 최근 시작했다고 10일 밝혔다.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산학협력단과 기업가센터는 입점을 희망하는 창업팀의 신청서를 받고 있다. 이화여대 재학생이나 지난해 졸업생, 올해 2월 졸업 예정자가 지원 대상이다. 기업가센터는 이달 25일 최소 4개의 팀을 선정해 다음달 1일 매장에 입주시킬 계획이다.

기업가센터는 입점 팀에 점포에 따라 50만~100만원 선인 월 임차료를 최대 1년간 전액 지원한다. 시제품 제작비와 홍보·마케팅 비용을 제공하고, 창업 교육과 컨설팅 등 창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교육도 병행한다. 지원 재원은 중소기업청과 서울시 등에서 조달했다. 기업가센터장을 맡고 있는 오억수 생명과학과 교수는 “창조경제 사회에 필요한 도전정신을 갖춘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모집 분야는 △사물인터넷(IoT) 관련 제품·서비스 △문화콘텐츠 관련 아이템 △패션·생활소품 △식품 등 4개다. 기업가센터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구분일 뿐”이라며 “이 범주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좋은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채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타트업 52번가’로 탈바꿈할 곳은 정문 오른쪽 방향에서 신촌기차역으로 난 길의 뒷골목이다. 이곳은 5년 전쯤만 해도 고급 옷가게가 많았지만 내수가 가라앉고 이화여대 앞 주 쇼핑객이 20~30대 한국인 여성에서 값싼 화장품을 중점 구입하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바뀌면서 옷가게들이 대거 빠져나가 슬럼화했다. 이곳에서 25년째 장사하고 있는 한 옷가게 사장은 “3~4년 전부터 손님이 뚝 떨어졌다”며 “종종 빈 가게에 새 사업자가 들어왔지만 6개월을 채 못 버티고 떠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이화여대에 세워진 기업가센터는 학생들의 창업 열기로 이 거리를 되살린다는 구상이다. 기업가센터는 실전 창업교육과 창업 지원 등을 전담하는 조직이다. 이화여대가 지난해 7월 중소기업청과 창업진흥원이 주최·주관한 ‘2015년 대학 기업가센터 지원사업’ 주관대학에 선정되면서 설립됐다.

젊은 창업가를 입점시켜 쇠퇴한 공간을 살리는 전략은 해외에서 이미 성공 가능성을 보였다. 온라인 신발판매 사이트 자포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문 닫은 카지노호텔이 즐비한 구도심에 신진 디자이너와 정보기술(IT) 창업가 등을 불러 모아 개성 있는 가게들을 조성했다. 2013년 탄생한 ‘컨테이너 파크’는 최근 라스베이거스의 주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