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 나선특구개발, 국제규범 준수에 달렸다
지난 18일 북한의 대외선전 웹사이트 ‘내 나라’는 나진·선봉경제특구에 154억8000만달러(약 18조원) 규모의 외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산업구 9곳과 관광지 10곳을 개발해 동북아시아의 물류·산업·관광 허브로 육성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외국인투자기업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투자기업에 대한 이윤보장 및 이윤의 본국송금 보장, 자율경영 보장’ 등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또 세금정책과 외국기업과의 합작·합영이 가능한 8개의 북한기업을 공개하고, 투자항목과 기업설립 절차에 대한 구체적 내용도 담았다. 이번 북한 발표는 외견상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을 도입한 중국이나 베트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북한이 이런 발표내용을 제대로 이행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

전형적인 저개발 소국경제인 북한이 경제특구를 통해 자본부족과 시장협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방향은 옳다. 외화난이 극심한 북한은 해외자본 유치를 통해 자본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시장협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선경제특구는 북·중·러의 국경지역에 있어 잠재적 개발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나선경제특구에 대한 북한의 개발의지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북한이 나선경제특구 개발을 공표한 것은 1991년이다. 그러나 특구지정 24년이 지났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간혹 북중, 북러 간 기획 합영투자 소식이 들리기는 하지만 다른 외국인투자자의 특구에 대한 직접투자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나선특구가 높은 잠재가치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북한의 나쁜 관행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특구를 지정했다는 사실이 곧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제특구 개발계획을 발표했다고 해서 해외자본이 바로 투자의지를 갖고 몰려드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먼저 해외자본이 경제특구에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세계 각국이 투자유치를 위해 설정한 경제특구는 5400여 곳을 헤아린다. 나선경제특구가 외국인투자유치에 성공한다는 것은 미인대회에서 진(眞)으로 뽑히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얘기다. 미인대회에 선발기준이 있듯이 외국인투자자의 경제특구 선정에도 기준이 있다. 중요한 건 투자유치 조건 외에 국제상거래 규범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북한의 경제특구에 대해 외국인투자자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북한이 국제규범을 벗어난 행위를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해외자본이 얻은 이윤의 송금을 사실상 차단하는 게 대표적이다. 최근 북한 내 이동통신사업자인 이집트 오라스콤은 5억달러 상당의 이윤을 본국에 송금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보도다. 북한은 오라스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외국인투자기업의 이윤송금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외투자자들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오라스콤의 이윤 송금을 허용하는 순간 해외투자자의 시선은 바뀔 것이다. 오라스콤 사태 해결 여부가 해외투자자의 북한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다.

북한이 경제특구를 설정하는 목적은 해외투자 유치를 통해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에 있다. 중국과 베트남도 경제특구를 시작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했다. 이들 국가의 성공이 북한에 주는 교훈은 국제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선경제특구도 예외일 수 없다. 북한이 나선경제특구에 계획한 해외투자를 유치하려면 북한 당국의 국제규범 준수의지를 국제사회가 확신토록 하는 길밖에 없다.

조영기 < 고려대 교수·한선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