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기술인력 양성과 연구개발(R&D) 사업을 지배하는 논리는 ‘산학협력’도 ‘클러스터’도 아닌 ‘지역균형’이다. 지난 5년 사이에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 과학기술원 두 곳이 새로 들어섰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GIST(광주과학기술원)를 합해 네 개로 늘어났다. 다른 지역도 과기원 유치 경쟁에 나서는 등 연간 수백억원씩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과기원을 놓고 지역 간 ‘나눠먹기식’ 경쟁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의 설문조사 결과 주요 대학 공대 학장 10명 중 6명은 “지역균형발전 등 정치논리에 따라 과기원이 난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산업현장서 멀어진 공대] '정치논리'에 지역별 과학기술원 난립하는 한국
과기원은 1995년 광주광역시에 GIST가 들어서면서 본격화했다. 2000년대 들어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와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과기원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2011년 DGIST, 올해는 UNIST(울산과학기술대가 과기원으로 전환)가 각각 대구와 울산에서 개원했다.

그러자 과기원이 없는 다른 지역들도 지역구 정치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과기원 유치를 타진하고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는 부산경남과기원, 전북과기원, 창원과기원, 부산과기원 등 4곳의 과기원 설립 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부산경남과기원 관련 법안만 두 개다. 의원들은 저마다 “지역 경제 규모에 걸맞은 과학인재 양성 기관이 있어야 한다”며 과기원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한 지방 국립대 총장은 “대전에 KAIST가 있으니 광주·대구·울산에도 하나씩 만들어 달라고 해서 이 지경이 됐다”며 “이렇게 가다간 광역지자체마다 과기원이 하나씩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과학기술인력 양성이라는 취지보다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과기원 설립에 크게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학계에서도 과기원 난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진우 고려대 공대 학장은 “지역 발전을 염두에 둔다면 기존 지방 국립대를 집중 육성하면 되지 구태여 지역마다 과기원을 따로 둘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경북대의 한 교수는 “과기원들이 1997년 설립됐다가 중복 투자 등 문제로 2009년 KAIST에 통합된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과기원들의 교육·연구 방향 또한 나노소재·바이오 등 첨단 분야 일색이어서 해당 지역에 있는 산업체와의 산학협력이나 클러스터 구축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동현/오형주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