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세계 반도체 업계의 판이 바뀌고 있다. 초대형 인수합병(M&A)과 기술제휴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스마트폰, PC 등 전방산업의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반도체 업계가 강하고 기술력 있는 업체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기존 메모리 반도체에만 머무르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사 잇단 초대형 M&A…한국만 소외, '메모리 독주'도 위태
시작은 네덜란드 자동차용 반도체업체 NXP가 끊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경쟁사인 미국 프리스케일을 118억달러(약 13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자동차용 반도체업체 4, 5위인 두 회사는 합병으로 단숨에 세계 1위가 됐다. 인터넷에 연결된 ‘커넥티드 카’ 시대를 대비한 포석이었다.

5월엔 싱가포르 아바고가 미국 통신반도체업체 브로드컴을 350억달러에 인수했다.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M&A였다. 바로 뒤이어 세계 1위 인텔이 네트워크 반도체업체 알테라를 187억달러에 흡수했다. 건당 수십조원이 넘는 M&A가 거의 매달 이뤄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계가 강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수년간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반도체업체도 몸집을 불려왔다”며 “최근 스마트폰 성장세가 주춤하고 PC 시장은 줄어들자 매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세계 3위인 퀄컴마저 실적 부진으로 분사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큰손’ 중국이 시장에 뛰어든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국은 올 들어 세계 4위 반도체 패키징업체인 스태츠칩팩과 세계 2위 CMOS 이미지센서업체인 옵니비전을 인수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한국 업체들은 제외돼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반도체 2위, 4위 업체지만 최근 수년간 이렇다 할 M&A를 하지 않았다. 국내 유일의 시스템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업체인 동부하이텍은 오히려 중국 업체에 팔릴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시장에서 세계 1, 2위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선 존재감이 미미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80%가 시스템, 20%가 메모리인 것을 감안하면 신사업 발굴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고위관계자는 “미국 인텔, 중국 BOE 등이 메모리 시장에 뛰어들면서 더 이상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며 “메모리 시장에서도 돈을 벌고 있을 때 미래 먹거리를 찾아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