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핵공업그룹이 지난 5월 초 푸젠성 푸칭에서 착공한 중국 3세대 표준 원전 화룽1호 건설 현장. 중국핵공업그룹 사이트 캡처
중국핵공업그룹이 지난 5월 초 푸젠성 푸칭에서 착공한 중국 3세대 표준 원전 화룽1호 건설 현장. 중국핵공업그룹 사이트 캡처
중국 최대 원전 개발업체 중국핵공업그룹(CNNC)은 지난달 22일 카이로에서 이집트원자력관리위원회와 원전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보다 사흘 앞선 19일엔 브라질을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를 수행해 브라질중앙전력공사와, 지난 4월엔 알제리 정부와 원전협력 MOU를 교환했다. 중국 독자 표준이 적용된 3세대 원자로 화룽(華龍)1호를 수출하기 위한 정지작업의 사례들이다. 리 총리는 이달 15일 CNNC 계열 중국원전엔지니어링 베이징 본사를 방문해 “원전도 고속철도처럼 빠른 속도로 해외로 나가길 바란다”며 “화룽1호를 세계 일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국제외교 무대에서 이름을 적극 알리겠다”고 말했다.

중국이 고속철도에 이어 원전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면서 ‘차이나 스탠더드(중국 표준)’ 세계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은 ‘세일즈 외교’로 독자 표준의 장비 등을 세계 곳곳에 깔아 사실상의 국제표준을 확보하는 전략과 공식적인 국제표준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차이나 스탠더드의 해외 진출이 ‘메이드인 차이나’에 해외 통행증을 주는 것”(화이진펑 공업정보화부 차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리포트] 중국 "원전·고속철, 우리가 곧 국제표준"…시장 흔드는 '차이나 스탠더드'
중국 30여개국에 고속철 수출 추진

화룽1호는 CNNC와 중광핵그룹(CGN)이 각각 프랑스 기술을 기초로 독자 개발한 100만㎾급 3세대 원자로인 ACP1000과 CAR1000을 지난해 국가에너지국의 요구로 합친 공통 표준이다. “다섯 손가락도 주먹을 쥐어야 힘을 쓸 수 있다. 원전이 해외에 나가려면 우선 중국 내 표준을 통일해야 한다”(리 총리)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CNNC가 지난달 7일 푸젠(福建)성에서 착공한 원전이 처음으로 화룽1호를 적용했다. 중국은 2월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4월 파키스탄을 찾았을 때 화룽1호 수출 MOU를 각각 체결했다. 중국에서 상용운전을 시작하지도 않은 화룽1호의 해외 진출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CNNC는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푸젠성을 시작으로 남아시아와 이집트 영국에 이르기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 원전벨트’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CNNC가 원전 수출을 협의 중인 국가는 20여개국에 이른다.

고속철도는 첫 국가표준이 2월 시행에 들어갔다. 중국은 이번에 제정한 국가표준이 적용된 고속철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러시아 등 해외 진출에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중국 철도 시공회사 중톄(中鐵)그룹이 지난 19일 설계사업을 수주한 모스크바와 카잔(타타르공화국 수도)을 잇는 고속철 노선(770㎞)에도 중국표준이 적용될 전망이다. 중국이 고속철 수출을 추진 중인 국가는 이란 미국 베네수엘라 등 30여개국에 이른다고 아사히신문이 최근 전했다.

중국은 2020년께 상용화할 5세대(5G) 이동통신 세계표준 제정 준비에도 한창이다. 오는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중국·유럽 정상회의에서 5G 표준 협력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중국정보통신연구원은 지난달 29일 5G 이동통신 표준 제정과제 등을 담은 백서를 내놓았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앞으로 5년간 6억달러를 들여 5G 기술 개발에 나서기로 했고, 이의 일환으로 유럽연구원을 설립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중의학·요리등 전통산업도 표준 제정

“중국 고속철도는 기본적으로 해외 표준에 따라 건설된 게 대부분이다. 독자 표준의 고속철이 없는 게 중국산 기술과 장비 수출의 장애물이 된다”(영국 텔레그래프)는 지적을 받아왔다. 고속철 수주 소식은 들렸지만 실제 중국 표준의 고속철이 달리고 있는 건 지난해 7월 터키에서 개통한 앙카라와 이스탄불을 잇는 고속철도가 1호다. 국가표준 제정은 중국 고속철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기 위한 것이다.

중국이 자국 기술이 반영된 국제표준을 만들기 위해 기존 국제표준과 다른 독자적인 표준 제정에 나서는 것은 외국기업의 특허료를 낮추는 전략으로도 활용된다. 한국표준협회는 ‘기술표준에서 중국의 부상’이란 보고서에서 “중국이 자국의 초기단계 기술 개발을 보호하는 동시에 외국의 특허권자와 협상 시 특허료를 낮추는 수단으로 독자기술 표준을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국제표준 확보는 비관세 장벽의 대응 수단으로도 추진된다. 중국이 최근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대나무 가공제품에 대한 국제표준을 제정할 기술위원회 설립을 인가받은 게 대표적이다. 대나무 바구니 등 대나무 가공제품은 중국산이 세계시장에서 66%를 차지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비관세 장벽을 계속 높여 대응 수단으로 국제표준 제정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팡아이칭 중국 상무부 차관은 “중의학과 중국요리 같은 중국 전통서비스업 표준도 만들어 해외 진출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3대 국제표준기구 요직 꿰차

중국은 자국 기술의 국제표준화를 주도하기 위해 국제표준기구 요직에 자국 인사 진출을 확대하는 전략을 펴오고 있다. 1월1일 ISO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한 장샤오강은 1947년 ISO 설립 이후 처음으로 수장을 맡은 중국계 인사다. 같은 날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사무총장으로 업무를 시작한 자오허우린도 ITU 설립 150여년 만에 나온 첫 중국계 사무총장이다. 앞서 2013년 1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부위원장직에 오른 수인뱌오를 포함하면 3대 국제표준기구의 요직을 중국계 인사가 모두 꿰찬 것이다.

중국계 인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IEC 산하 기술위원회(TC)도 2006년 IEC-TC 95를 시작으로 이미 40개가 넘어섰다. 중국 정부는 5월 발표한 ‘첨단장비 해외 진출 지침’에서 고속철도 전력 공정기계 화공 비철금속 건자재 등의 기술표준을 상호 인정하는 국가를 늘리고, 국제표준 제정에 적극 참여해 차이나 스탠더드의 국제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광진 중국전문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