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직원들 "왜 우리만 희생양 돼야하나"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사진)은 지난해 11월 취임 직후 금감원의 역할을 곧잘 ‘백조’에 비유했다.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일하되 겉으론 평정심과 엄정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요즘 금감원은 경남기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과 관련, ‘수면 아래에서 했던 일’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급기야 당시 담당국장이던 김진수 전 부원장보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황이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 줄곧 침묵하던 진 원장은 21일 과거 관행과의 단절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 참여자들이 이제는) 마음껏 뛰어다니도록 울타리를 걷어야 하는데 (금감원이) 아직 담임교사 역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사사건건 시장에 간섭하는 잘못된 관행과 결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충격 휩싸인 금감원

불구속 수사를 기대했던 금감원 직원들은 김 전 부원장보에 대한 검찰의 사전구속영장 청구에 크게 충격받은 모습이다. 팀장급 직원은 “돈을 받은 것도 아닌데 사전구속영장까지 청구할 줄 예상하지 못해 다들 놀랐다”고 전했다.

김 전 부원장보가 독단적으로 채권은행에 경남기업을 지원하라고 압박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김 전 부원장보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게 자신의 승진인사를 청탁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얘기가 검찰에서 흘러나온 데 대해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당시 인사권자인 최수현 전 금감원장의 신임이 두터워 임원 승진이 유력한 상황이었다”며 “김 전 부원장보가 성 전 회장에게 인사청탁을 할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부원장보가 성 전 회장에게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을 먼저 권유했을 뿐 아니라 워크아웃 전에도 신한·국민·농협은행이 대출지원에 나서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3차 워크아웃 신청 전인 2013년 10월27일 김 전 부원장보에게 “추가대출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김 전 부원장보는 “추가대출 대신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신규 자금지원도 되고 실사도 빨리해주겠다”며 워크아웃을 권했다. 경남기업은 이틀 뒤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우리만 희생양 되나” 불만

이런 가운데 진 원장은 “과거 관행을 되풀이하는 일이 없는지 짚어봐야 한다”는 말로 자성을 촉구했다.

그는 “한국 금융시장은 사실상 정부가 산업발전을 위해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 과정에서 울타리를 쳐 놓고 과잉 간섭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기업 구조조정도 시장 자율에 맡기고 금감원은 감독 및 중재 역할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금감원 직원 상당수는 “우리만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검찰과 감사원이 윗선에서 이뤄진 압력과 청탁 등은 밝히지 못한 채 실무 처리 역할을 한 금감원만의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박동휘/김일규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