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도 시장을 놓고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200조원 규모였던 세계 철도시장은 2018년 2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토목공사를 제외하고 궤도와 차량, 신호제어 시스템 등을 합친 규모다. 세계 철도시장의 전통적인 ‘3강(强)’은 캐나다 롬바르디아와 독일 지멘스, 프랑스 알스톰이었다. 이에 맞서 지난 몇 년간 급성장한 중국 기업과 일본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세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의 1, 2위 고속철 제조업체인 중국남차와 중국북차는 오는 9일 합병 주주총회를 열어 세계 최대 업체 ‘굳히기’에 나선다. 일본 히타치제작소는 지난주 이탈리아 핀메카니카 철도 사업부문 인수에 합의했다.
[글로벌 산업 리포트] 세계 철도시장 230조원…중·일, M&A로 덩치 키워 '서구 3강' 추격
세계는 철도 공사 중

독일 철도통계 전문기관인 SCI 퍼키어(verkehr)에 따르면 세계 철도 시장은 2018년까지 연평균 3.4% 성장해 1900억유로(약 23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는 1620억유로(약 200조원) 정도다.

[글로벌 산업 리포트] 세계 철도시장 230조원…중·일, M&A로 덩치 키워 '서구 3강' 추격
세계 곳곳에서는 대규모 철도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세계 최장인 1만6000㎞의 고속철도망을 건설한 중국은 2020년까지 전국을 동서남북으로 잇는 ‘4종4횡’ 철도망을 완성할 계획이다. 시속 200㎞ 이상의 고속철도 구간이 1만8000㎞로 늘어난다. 중국은 지난해 철도산업에 전년 대비 20% 증가한 7801억위안(약 136조원)을 투자했다.

인도는 7개 노선 3519㎞의 고속철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인도 정부는 지난달 26일 앞으로 5년간 철도 부문 현대화에 8조5000억루피(약 150조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고속철도 건설 계획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0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노선이 올해 입찰에 들어간다. 태국 군사정권은 자국 내 2개 노선 사업을 승인했고, 베트남도 하노이와 호찌민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 중이다.

중동 아프리카 브라질 등에서도 사업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6개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은 2017년 개통을 목표로 총 연장 2000㎞의 철도망을 구축한다. 동아프리카에서는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르완다를 연결한 뒤 남수단, 에티오피아 노선을 추가하는 철도 마스터플랜 사업이 구체화되고 있다. 브라질은 올 상반기 511㎞의 고속철도 입찰에 나선다.

선진국에선 미국이 지난달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총 연장 1287㎞의 고속철도를 착공했다. 영국은 지난해 8월 북부 5개 지역을 연결하는 150억유로(약 20조7400억원) 규모의 고속철도 네트워크 구상을 발표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계획된 시속 250㎞ 이상 고속철도 길이는 1만5476㎞에 달한다. 문진수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속철도뿐 아니라 일부 국가에서는 철도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철도 개량과 전철화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대규모 철도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철도 예산도 증액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中, 매출 34조원 세계 최대 철도회사 탄생

세계 철도 시장은 ‘전통 3강’의 수성 속에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1위에 올라선 중국과 일본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 1·2위 업체인 중국남차와 중국북차는 지난해 말 합병을 결정했다. 9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통과하면 ‘중국철도교통차량그룹(중차그룹)’으로 거듭난다. 2013년 기준 두 회사의 매출 합계는 1951억위안(약 34조1000억원)으로 롬바르디아, 지멘스, 알스톰의 철도 부문 합계를 웃돈다.

중국북차를 비롯해 중국 철도 관련 회사는 세계 최장의 고속철도망 건설로 축적된 경쟁력을 기반으로 수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위웨이핑 중국북차 사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미국 러시아 브라질 태국 등 28개 국가와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중국남차와의 합병으로 수출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에 서구 3강 업체는 수익성 위주의 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이 눈독을 들이는 부분은 신호제어를 중심으로 한 운행관리 시스템이다. 지멘스는 2012년 말 철도 신호시스템 분야 세계적 기업인 영국 인벤시스레일을 인수했다. 프랑스 알스톰도 지난해 제너럴일렉트릭(GE)에 에너지사업 부문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대신 GE의 철도 신호사업을 사들이기로 했다.

한·일 업체들도 맹추격

히타치는 지난달 24일 2600억엔을 투자해 이탈리아 국방항공 분야 대기업인 핀메카니카의 철도 차량신호 사업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히타치의 철도부문 매출은 4100억엔으로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단숨에 알스톰, 지멘스 등의 절반 수준까지 올라간다.

한국의 현대로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국내 철도차량을 100% 생산하고 있고 터키와 인도 등 35개국에 수출한 경험이 있다. 현대로템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8년 12위에서 2011년 9위로 상승했고, 2013년에는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을 제치고 7위로 도약했다. 현대로템은 미국 터키 브라질 등에 생산법인을 설립해 현지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문 연구위원은 “철도는 전자 전기 토목 건축 등 다양한 산업과 연계된 종합산업으로 글로벌 시대의 신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기업의 제품 경쟁력뿐 아니라 해외 철도사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금융 지원 강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리커창·아베 총리 “나는 고속철 세일즈맨”
중, 작년 1400억弗 수주…일, 인도서 신칸센 영업


세계 고속철도사업 수주전이 치열해지면서 각국 정상도 ‘고속철도 세일즈맨’을 자처하고 있다. 해외 순방이나 주요 인사들이 방문할 때마다 고속철 발주 때 협조를 당부하며 수주 성공을 이끌고 있다.

고속철 외교의 대표주자는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다. 스스로가 “외국에 나가 중국 고속철을 팔기 위해 홍보할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힘이 우러난다”고 말할 정도다. 리 총리는 지난해 12월16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중국-중·동부 유럽 정상회의’에서도 중국 고속철의 우수성을 홍보하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그리스 피레우스까지 연결하는 고속철 건설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에만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아시아·동유럽 3개국 등 다섯 차례 외국 방문을 통해 고속철 등 인프라 분야에서 모두 1400억달러(약 154조원)에 달하는 계약을 수주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철도사업을 추진 중인 해외 정상을 만난 자리에선 어김없이 일본 기업 수주에 대한 협조를 당부했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28일 “인도 고속철도 건설 프로젝트 제1탄으로 뭄바이와 구자라트주를 잇는 구간에서 일본 신칸센 방식 채용이 유력해졌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오는 4월 말~5월 초로 예정된 미국 방문길에도 1999년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 이후 처음으로 캘리포니아를 찾아 일본 기업의 고속철 수주를 지원하는 ‘신칸센 영업’에 나설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12월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만나 올 연말 이후 경쟁입찰 방식으로 추진되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고속철도 건설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 확대를 요청했다.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의 회담을 통해선 일본으로 기울었던 고속철도 사업을 한국 쪽으로 돌려놨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