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포드 애스니스 AQR 창업자는 “현재 시장은 거품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상당히 고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유창재 특파원
클리포드 애스니스 AQR 창업자는 “현재 시장은 거품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상당히 고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유창재 특파원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은 금융시장을 완전히 다르게 보는 두 명의 경제학자가 공동 수상했다. 한 명은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한 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였다. 다른 한 명은 “시장은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였다.

투자자의 시각에서 보면 두 사람 간 차이는 ‘펀드매니저가 과연 시장을 이길 수 있느냐’로 요약된다. 파마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시장(혹은 가격)은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반영하기 때문에 펀드매니저는 시장을 웃도는 수익률을 낼 수 없다. 반면 실러 교수에 따르면 시장은 종종 비이성적이어서 어떤 시점엔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비싸거나 싸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클리포드 애스니스 AQR(Applied Quantitative Research) 창업자(48)는 파마 교수의 애제자다. 시카고대에서 파마 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시에 그는 펀드매니저다. AQR은 운용자산이 1050억달러(약 106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다. 미국 코네티컷주 그린위치에 있는 AQR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당신은 파마와 실러 교수 중 어느 쪽이냐.

“파마 교수쪽에 더 가깝지만 중간 어디쯤에 있다. 시장은 대체적으로 효율적이지만 아주 가끔 비이성적이다. 분산투자를 통한 완벽한 헤지로 시장과의 ‘상관관계를 없애는 것(uncorrelated)’만이 금융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공짜 점심이다.”

▷파마 교수는 당신 같은 펀드매니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25년 전인 1989년 파마 교수는 학생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효율적 시장 이론의 창시자인 그가 수업에 들어와 ‘시장은 완벽하게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하면서다. ‘완벽하게’라는 말은 너무 극단적인 가정이라는 게 파마 교수의 요지였다. 실러 교수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비이성적이라고 말하지만 시장이 바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파마 교수에게 훨씬 가깝다. 기본적으로 시장은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999년 닷컴버블이나 2007년 주택시장 신용거품을 목격하면서 시장도 가끔 비이성적일 때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투자의 관점에서 당신과 파마 교수는 어떻게 다른가?

“내 인생에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 언제인지 아느냐? 파마 교수에게 ‘가격 모멘텀 전략’에 대해 박사 논문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다. 모멘텀에 따라 주가가 오르는 주식을 사고 하락하는 주식은 파는 것인데, 파마 교수는 그 전략을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는데 다행히 파마 교수가 순순히 승낙했다. 물론 나는 시장을 쉽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타이밍을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실러 교수가 시장이 과열됐다고 말한 1996년에 그를 펀드매니저로 고용했다면 닷컴버블이 붕괴된 2000년이 되기 훨씬 전에 그를 해고했을 것이다.

AQR은 가치투자, 모멘텀투자, 캐리투자(저금리에 돈을 빌려 고금리 상품에 투자하는 전략), 로베타투자(시장위험과의 상관관계를 최소화하는 전략)를 기본으로 한다. 그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가치투자를 고른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주식이 싼 이유는 비싼 주식에 비해 더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이성적 시장을 믿는 진영은 주식이 싼 이유는 사람들이 실수를 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주식은 실제 가치에 비해 너무 싸게 가격이 책정돼 있다는 것이다. AQR은 그 중간이지만 효율적 시장에 더 가깝다.”

▷비이성적 시장 상황에서 수익을 낸 적은.

“내가 시카고대에서 함께 공부한 존 루와 AQR을 설립한 건 1998년이었다. 첫 상품은 주식 롱쇼트(주식 매수와 공매도를 병행해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전략) 펀드였다. 첫 2년 동안 S&P500지수는 30% 넘게 올랐고 나스닥지수는 세 자릿수대 상승률을 보였다. 우리 펀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주식을 사서 돈을 벌었다. 추격 매수에 나서라는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시장이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롱쇼트 전략을 유지했고 2001년부터 많은 돈을 벌었다.”

▷현재 시장에도 거품이 끼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보면 1927년 이후 지금보다 주식이 쌌던 시기는 전체의 85% 정도다. 닷컴버블(거품) 당시에는 100%였다. 닷컴버블 당시의 주가보다 비쌌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얘기다. 현재 시장을 거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고평가된 시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주식 채권 등 모든 자산 가격이 비싼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떤 투자 전략을 써야 하나.

“현재의 자산 가격 수준을 바탕으로 단기적인 투자 타이밍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앞으로 10~15년 동안 투자 수익률이 역사적인 평균에 비해 낮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주식 60, 채권 40’의 전통적인 분산 투자로는 보통 연기금이 목표로 하는 5%의 실질 수익률(인플레이션을 제외한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리스크도 크다. 우리는 리스크를 더 효율적으로 분산하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리스크 균형(risk parity) 전략’을 사용한다.”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가져가나.

“구체적으로 경제 성장의 혜택을 보기 위한 글로벌 주식, 디플레이션 위험을 방어하는 정부 채권, 인플레이션 위험을 방어하는 상품 선물 및 물가 연동 채권 등 세 가지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리스크가 가장 작은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주식, 상품 순으로 구성한다. 역사적으로 리스크 균형 전략이 60 대 40 전략에 비해 리스크 대비 높은 수익률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주가 랠리로 분산 투자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언제나 분산 투자가 개별 투자를 이긴다. 분산 투자는 금융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진짜 공짜 점심이다. 오히려 나는 헤지펀드들이 완전히 헤지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헤지펀드 수익률은 주식시장과 상관관계가 굉장히 높다. AQR이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부가가치는 주식시장과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투자 수익률이다. 우리는 모든 투자 전략에서 롱포지션과 쇼트포지션의 비율을 같게 해 시장과의 상관관계를 없앤다. 인덱스펀드보다는 비싸지만 다른 헤지펀드보다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공한다.”

애스니스는 누구…노벨경제학상 유진 파마 제자…1050억弗 굴리는 투자 큰손

[글로벌 금융리포트] 세계적 헤지펀드 AQR 창업자 클리포드 애스니스 "효율적인 시장도 가끔 비이성적…분산투자가 유일한 공짜 점심"
클리포드 애스니스의 아버지는 유명한 변호사였다. 애스니스도 펜실베이니아대 재학 시절 변호사를 꿈꿨다. 하지만 아버지는 “숫자에 밝은 네가 왜 변호사를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말렸다.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들의 프로젝트에 연구 보조로 참여하면서 금융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애스니스는 결국 금융학을 깊이 공부하기로 하고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간다.

여기서 효율적 시장 이론의 창시자이자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유진 파마 교수를 만나 그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는다. 논문을 쓰면서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사업부(GSAM)에 스카우트된 애스니스는 퀀트(quant·계량분석) 리서치그룹을 만든다. 그는 “우리의 학문적 발견을 고객 돈을 벌어주는 데 활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는 게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애스니스는 시카고대 동료인 존 루와 골드만삭스를 나와 1998년 AQR(Applied Quantitative Research)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금융세계에 발을 담갔다. 당시 운용자산(AUM)이 새내기 펀드로는 사상 최대인 10억달러에 달했다. 퀀트를 활용한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한 직후라는 걸 고려하면 애스니스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를 엿볼 수 있다. 현재 AQR은 1050억달러를 굴리는 세계 7위 헤지펀드로 성장했다. 한국투자공사(KIC)가 지난 5월 최우수 외부 자산운용사로 선정했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꾸준히 금융 관련 학술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학자로서의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그린위치=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