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다산칼럼] 법치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세월호 후유증
세월호 사고로 한국이 3류 국가가 됐다고 탄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3류 국가는 ‘4·16 이후’ 대한민국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세계 15대 경제에,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가 한 달 넘도록 국가 만사 다 놓고 비탄과 대통령 타령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죽은 애들을 박근혜가 살려내라, 대통령이 책임져라, 대통령이 사과해라….’ 이씨왕조 때처럼 대통령이 소복 입고 3년 석고대죄를 해야 이 드라마가 끝날 것인가.

민주주의 국가는 시민이 주체인 나라다. 시민이 각자 자기 직분을 맡아 나라를 만들므로 응당 책임도 그 담임자에게 물어야 공동체가 유지된다. 이런 상식을 갖춤이 민주주의 정신이며, 이렇게 시민 각자에게 자신의 행위를 귀책시키는 것이 법과 공권력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그런 법치민주주의 관념이 희박해 엉뚱한 데에 책임 소재를 돌리는 인간들이 늘어왔다. 세월호 참변은 기본적으로 극히 부도덕한 한 민간 선사가 저지른 범죄며, 선장과 승무원들이 제 할 일을 했다면 적은 인명피해를 낸 선박사고로 그쳤을지 모를 사건이었다. 따라서 언론의 비난과 유가족의 분노도 사악한 청해진 선사와 승무원들에게 집중돼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언론은 ‘정부 리더가 제1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 생명을 못 지키는 정부는 정부도 아니다’고 찍어대고, 박근혜 대통령도 이에 얹혀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사과했다. 그렇다면 선박 승무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직무를 다해 승객을 모두 구했을 때 이것은 다 대통령의 공인가?

우리가 큰 사고가 날 때마다 대통령에게 몰려가는 것은 주군이 백성의 생사고락을 결정한다는 신민(臣民)사상에 아직도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것이 국민의 잘못은 다 대통령의 정치 탓이고 지도자는 모든 피해자를 품는다는 반(反)민주주의 관념을 국민에게 심어준다. 따라서 나라가 잘못됐으니 뒤집어야 한다는 세력들이 설치고, 대통령 후보였다는 인물이 ‘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라는 트위터 글을 올려 선동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와우아파트, 삼풍, 성수대교 같은 대형사고가 몇 년에 한 번씩 나는 이유는 그간 법령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위자가 경찰을 두들기고, 민권변호사는 경찰을 체포하고, 대통령이 범법자를 수백만 명씩 사면 감형하고, 불법노점상 무허가주택 무엇하나 제어하려면 야당·좌파집단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정권을 매도하는 나라다. 그러니 아무도 법을 무서워하지 않고 누구나 자기 책무를 적당히 때우려 한다.

법치가 없으면 그 자리에 관치와 정치가 설치게 마련이다. 기업과 유착·묵인하는 공무원, 정치에 줄 대는 관료, 무법자의 눈치를 보는 경찰, 해경의 무능함 같은 일탈이 존재하는 것은 모두 법의 무력함을 믿기 때문이다. 어떤 대통령은 “정당하지 않은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어떤 시장은 대학생들에게 “감옥에도 꼭 가보라”는 연설을 했다. 이런 법치 무시의 오랜 적폐가 쌓여 사회 각 조직에 매수·기만·유착이 만연한 것이다.

세월호 애도가 한없이 지속되는 것 역시 3년 상복을 입던 조선시대를 방불케 한다. 수백 명 청소년들의 참변을 기억함과 비탄에 갇혀 나라를 망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애도 분위기가 사회를 뒤덮으며 반짝 살아나던 부동산 시장이 죽고, 식당 미용실 노래방 등 서민경기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6·4 지방선거가 코앞이지만 국민의 관심은 땅에 떨어져 후보자의 품질과 공약을 검증할 수 없다.

사회적 패닉은 어떻게든 불행한 국민을 만들어 사회를 뒤엎고 싶은 반(反)법치집단에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온 나라가 비감에 잠겨 무기력을 자초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세계에 비웃음거리가 되고, 국민 안전에도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세월호 같은 3등 국가 재난은 우리가 1등 민주주의 시민이 되지 않는 한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는 국민 각자가 선동적 정치세력의 유혹을 뿌리치고 명실공히 민주주의 정신을 익힌 다음에야 바라볼 수 있다.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