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주요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한 ‘조선왕실의궤’는 2011년 말 국내로 돌아왔다. 1922년 조선총독부가 오대산 사고에 있던 의궤를 일본으로 강탈해간 지 89년 만이었다. 혜문 스님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정부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책마을] 日학자가 밝힌 한국 문화재 약탈사
일본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식인이 있었다.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해온 아라이 신이치 스루가다이대학 명예교수다. 그는 당시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 참고인으로 나가 “‘조선왕실의궤’는 궁내청의 서고에 잠들어 있기보다 조선 왕조의 문화적 상징으로 그 고향에 있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는 저자가 당시 경험을 계기로 일제의 문화재 약탈사에 대해 쓴 책이다. 올해 88세의 노학자는 유럽의 홀로코스트 문제, 일본의 전쟁범죄와 책임 등 전쟁 문제에 천착해 왔다. “역사 자료 등의 문화재는 그것을 낳은 환경과 배경에 있어야 진가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 기본적인 틀은 식민지 지배 청산”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책 전반부에선 일제의 문화재 반출사를 상세하게 다룬다. 일제강점 시기, 일본은 각 분야에 걸쳐 조선의 문화재에 대한 학술조사를 벌였다. 전쟁을 이용해 학술·문화 분야에서도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학술·문화 수준을 문명국의 지표로 보고 중국과 조선에서 문화재를 폭력적으로 수집해 문명화의 수단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인 개인 수집가들도 광범위한 약탈에 일조했다. 저자는 “한국의 고물(古物)에 대한 관심이 높아 자료나 미술품 등을 수집하는 붐이 일어났다. 일본 본토를 포함해 거대한 한국 골동품 시장이 형성돼 엉큼한 상인들이 암약했고 그 결과 현지 유적이나 사찰 등이 황폐해지거나 국보급 석조 미술품 매매에 거품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세계사적으로 문화재를 원산지로 돌려보내려는 움직임이 문화재 반환 문제로 표면화돼 가고 있다”며 “문화재는 원산지 사람들의 정체성이나 역사에 대한 기억과 깊이 연결돼 있기에 그것을 되돌리려는 움직임은 지역이나 민족의 자립과 정신적 독립의 증표이자 해방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