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1원 낙찰 부추기겠다는 정부
정부가 ‘의약품 시장형실거래가’를 4년 만에 다시 시행하겠다고 하자 의료계와 제약업계 모두 아우성이다. “정부가 나서서 1000원짜리 약을 1원, 5원, 10원짜리로 둔갑시키고 있다”, “대형병원 살리자고 제약사만 두들겨 잡는다”는 등 온갖 루머들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당사자인 제약업계는 패닉 그 자체다. 얼마 전 만난 A제약사 대표는 “우리(제약사들)도 병원 앞에 약을 쌓아 놓고 불태워야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끝나지 않겠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시장형실거래가는 다른 말로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라고도 불린다. 병원이 제약사로부터 약값을 보험상한가보다 싸게 구입하면 정부가 차액 중 일부를 병원에 인센티브로 주는 제도다. 2010년에 중단됐다가 최근 정부가 다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병원 입장에선 조제약을 싸게 구입하면 정부 인센티브까지 받을 수 있다. 조제약 입찰에 참여한 제약사 중 가장 낮은 약가를 써낸 제약사 약품을 공급받으면 된다. 제약사가 대형병원에 약을 공급하려면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 오죽하면 이 제도가 잠깐 시행됐던 몇 년 전 단돈 1원에 낙찰된 의약품이 수천 개에 달했을까.

당시 제약업계와 시민단체 할 것 없이 원성이 자자했다. 대형병원이 정부에서 받는 인센티브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병·의원이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고 정부로부터 인센티브까지 받으면 제약사 리베이트를 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 정부 논리였다. 리베이트를 잡기 위해 제값을 받고 팔 수 없게 만드는 불공정시장을 정부가 나서서 만드는 꼴이다.

병원에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수지를 못 맞추는 제약사들이 병원 입찰을 포기하면 결국 효능이 떨어지는 저질 약품 위주의 조제약 공급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시장형실거래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인데, 보건당국은 여전히 ‘시장형’ 정책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한 시민단체는 4일 ‘제약업계가 흔들리면 그때 가서 약값을 크게 올리겠다고 다시 병원을 쥐어짤 것인가’라는 논평을 내놨다. 시민단체조차 이 제도의 불공정함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준혁 중소기업부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