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정보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자본 조달비용 줄어든다
“여러분은 친구를 믿으십니까? 최고경영자과정을 들으시면서 70명 정도 새로 만나셨죠? 여기서 만나신 분들은 어떻습니까.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여러분 친구와 동업하시겠습니까? 사업을 같이 할 만한 친구가 있으신가요? 많은 분들이 친구와 사업은 같이 못하겠다고 합니다. 돈 때문에 우정이 깨진다고도 하죠.”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가을학기 아홉 번째 시간. ‘기업 지배구조와 기업성과’ 강의를 맡은 조성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사진)는 이처럼 ‘잘 아는 친구가 하는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친구와 동업은 못하면서 주식 투자를 하는 이유

“다른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주식 투자 한 번도 안 해보신 분 계십니까? 거의 없으시죠?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중한 돈을 투자한 그 기업의 경영진을 얼마나 아시나요? 밥이라도 한 끼 함께 드셔 보셨나요? 아니면 악수라도 해보셨을까요? 주식을 산다는 건 지분이 굉장히 작기는 하지만 동업을 한다는 얘기입니다. 잘 아는 친구와는 동업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잘 모르는 회사에는 투자를 한다는 거죠. 무엇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는 걸까요?”

국내 주식시장은 코스피(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으로 나눠져 있다. 상장기업 수는 1000개 안팎으로 비슷하지만 시가총액은 10배가량 코스피시장이 크다. 두 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에 공시 의무가 있고,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야 하는 등 비슷한 규율을 받는다. 그러나 우량주에 장기투자하는 사람이 개별 종목을 잘 모른다면 코스피시장으로 가는 경향이 높다.

기업이 정보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자본 조달비용 줄어든다
“잘 모를 때 코스피시장에 투자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느냐는 겁니다. 잘 아는 친구에게도 투자하지 않는 사람이 상장기업에 투자한다는 건 그만큼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것이죠. 개인적인 우정보다는 회계감사나 공시 같은 제도,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같은 감시자, 애널리스트와 회계법인 등 회사를 분석하는 제3자 등이 있기 때문에 투자가 이뤄집니다. 지배구조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지배구조라고 하면 으레 회사를 들들 볶고 못살게 구는 사외이사 같은 걸 생각하시는데, 저는 그런 것보다 투자자의 주머니에서 돈을 나오게 만드는 시스템을 지배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관점에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투자자 보호’ 발달한 영미권이 상장사도 많아

조 교수는 일반적으로 금융시장의 발전이 사유 재산과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잘 갖췄느냐와 상관관계가 높다고 설명했다. 투자자 보호 제도는 크게 채권자 보호, 주주 보호, 합리적인 기업 도산 절차 등으로 구분된다.

“1997년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 내부 문제도 있었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위기가 전염됐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컨설팅을 했는데, 그중에서 태국은 채권자가 받을 돈을 못 받았을 때 법원에 소송을 내면 절차가 끝날 때까지 10년이 걸리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가끔 있는 일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법원에서 판결이 나오는 시간이 10년 걸린다는 겁니다. 굉장히 큰 리스크(위험)죠. 주주로서 투자하는 것은 물론 돈을 빌려주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태국은 가족 기업이 무척 많습니다.”

조 교수는 이어 강의실 화면에 40여개 국가별 주주의 권리 보호 수준, 법 집행의 엄격함, 기업 운영 형태 등 다양한 지표가 담긴 큰 표를 띄웠다. 각 국가들은 크게 영미법권, 프랑스법권, 독일법권, 북유럽법권 등으로 분류했다. 한국은 독일법을 받은 일본법을 다시 받아 독일법권에 속해 있다.

법 집행의 엄격함은 전체 평균이 6.85점이며 북유럽권이 10점으로 가장 높고 독일권 8.68점, 영미권 6.46점, 프랑스권 6.05점 등의 순이다. 그러나 주주 권리 보호는 영미권 3.11점, 독일권 2.33점, 북유럽권 2.00점, 프랑스권 1.58점 등의 순서로 법 집행의 엄격함과 다르게 나타났다.

“법 집행의 엄격함은 말 그대로 제도가 얼마나 잘 지켜지느냐고, 주주 권리 보호는 제도가 얼마나 잘 정비돼 있느냐이기 때문에 결과가 다릅니다. 자본시장, 즉 주식회사 제도가 가장 발달한 영미권이 주주 권리 제도도 잘 돼 있고 은행 중심인 독일이나 프랑스권은 주주 권리 제도가 영미권보다는 덜 치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구 1000명당 주식회사 수도 영미권이 35개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북유럽권이 27개, 독일권이 16개, 프랑스권이 10개 순이다. 인구 1000명당 상장사 수 역시 영미권이 2.23개, 북유럽권 2.14개, 프랑스권 0.19개, 독일권 0.12개 순이었다. 한국은 1000명당 기업 수 16개, 상장사 수는 0.26개다.

“여러분 주위에 은퇴하신 분들이 어떤 일을 하십니까? 치킨집으로 대표되는 자영업을 많이 생각하시죠. 자영업은 자기 자본이 적은 만큼 외부 환경에 취약합니다. 여러 사람의 자본을 끌어모아 창업하면 안정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동업하는 게 유리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친구와도 동업하기가 어렵습니다.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봐도 투자자 보호가 잘 돼서 투자자들이 기업을 믿을 수 있다면 자본이 더 많이 기업에 투자될 수 있습니다. 투자자를 많이 보호할수록 자본이라는 힘이 집중되는 겁니다.”

○주식 장기 투자가 돈이 된다는 ‘학습’ 필요

조 교수는 이어 로저 아이벗슨 미국 예일대 교수가 1995년 쓴 ‘주식, 채권과 인플레이션’에 나오는 ‘1926년부터 1994년까지 투자 수단별 수익’ 그래프를 화면에 띄웠다. 1달러를 1926년 1월1일에 투자했을 때 1994년 12월31일의 가치를 계산한 것이다. 스몰캡(시가총액이 작은 종목) 투자가 2842.77달러로 1위, 라지캡(시가총액이 큰 종목) 투자가 810.54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장기 국채가 25.86달러, 단기 국공채가 12.19달러, 부동산 등 실물 자산이 8.35달러로 집계됐다.

“그래프에 제시된 기간에 대공황이 있었는데도 주식 투자가 수익률이 가장 좋았습니다. 이 기간을 2010년까지 늘린다고 해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지만, 역시 주식 투자가 월등히 높습니다. 미국은 이렇게 주식에 오래 투자하면 돈이 된다는 믿음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국내 투자자들은 주식을 3년 이상 갖고 있으면 손해본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리고 한국인은 참을성이 없고 가까운 미래만 보기 때문에 장기 투자를 못한다는 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부동산으로 큰돈 버신 분들 어떻습니까. 일부 투기꾼을 빼면 대부분 예전부터 꾸준히 보유하고 있던 땅이 크게 오른 경우죠. 또 주위에서 그런 사례를 보면서 오래 갖고 있으면 돈이 된다는 믿음도 생겼고, 그 믿음대로 오래 보유하다 보니 돈도 벌게 된 겁니다. 이처럼 주식도 돈이 된다는 걸 학습만 하면 장기 투자 분위기가 정착이 될 텐데, 그러려면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야 합니다.”

기업이 정보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자본 조달비용 줄어든다
○지배구조 개선은 자본 조달 비용 감소로 연결


기업 차원의 지배구조와 국가 자본시장 차원의 지배구조는 다르다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자본시장에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자본 조달 비용 감소로 이어져 경제 전체적인 효용이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제도를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비할수록, 즉 기업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가 기업 범죄를 엄격하게 규율할수록 정보의 비대칭성이 완화됩니다. 구체적으로는 경영진이 횡령이나 배임을 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내부자 거래도 감소합니다. 그에 따라 감시·감독의 필요성도 줄어듭니다. 결국 자본시장에 자금이 더 많이 들어오고 자본 조달 비용은 줄어듭니다. 기업은 줄어든 비용만큼 기업 발전에 투자할 수 있게 되죠. 국제적으로도 자본시장 제도가 잘 정비된 나라에 글로벌 펀드 투자 자금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경영진은 불안한 투자자를 배려해야”

조 교수는 개별 기업에 지배구조는 ‘기업에 자본을 조달하는 투자자(주주와 채권자)가 투자에 대해 적절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기업의 내규와 조직, 인센티브, 경영 목표를 설정하는 기업내부지배구조와 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경영진은 투자자의 불안과 걱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자는 경영진에 대한 감시가 불충분하다는 걸 알고 투자하는 것이긴 합니다. 그래도 걱정은 하죠. 경영진 중에는 기업 감시 체계를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특히 기관투자가의 감시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게 바람직합니다. 까다로운 기관투자가가 투자하는 기업이라는 건 시장에 굉장히 좋은 신호를 주는 거니까요. 소유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기업 헌장이나 사규에 경영진 선임과 보너스 기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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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하는 것만 해도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지배구조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인 말 중 하나입니다. 경영진과 투자자 사이의 이해 상충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일 수 있습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