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깁기와 조작, 교묘한 발췌와 억지 해석으로 뒤범벅인 동영상들이다. 자기학대적이며 뒷골목 건달들의 비열한 분탕질 같은 분위기마저 풍긴다. 제작자는 뒤에 숨어 낄낄대며 이죽거린다. 오로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데 바쳐진 동영상이다. 만화적 기법까지 더해 실로 모욕감을 증폭시킨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미국인이 채찍을 휘두르면 몸집이 작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겁을 먹고 몸을 떤다는 식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4·9통일평화재단이라는 조직에서 공동 제작했다고 자막이 뜬다. 전교조 교사가 교실의 학생들에게 단체로 틀어주고 있다는 다급한 제보가 들어온다.

1978년 미국 프레이저 의원이 작성한 한·미관계 보고서를 근거로 제작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타이틀도 ‘프레이저 보고서’다. 그러나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동영상은 형편없는 짜깁기로 프레이저 보고서의 사실관계와 일치하는 것이 없다. MBC 광우병 보도에서 자신감을 얻은 좌익들의 저질 팩쇼널리즘이다. 이런 자료로 반(反)박정희 캠페인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그들이 지금 하는 일이다. 방문자가 벌써 수십만명에 이른다. 박정희에게 실망했다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박정희가 아니라 미국의 작품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반응들이다.

이 보고서는 1980년대 초반 한국 경제를 소위 종속이론의 틀에 구겨넣고자 하던 좌익 세력들이 종종 인용한 문서다. 박동선 로비 사건과 연이어 김형욱 실종 사건이 터지면서 미국 의회가 발간한 광복 후 한·미관계를 총정리한 보고서다. 결론이 없다. 굳이 결론이라면 한국의 경제성장은 한국인의 몫이라는 마지막 평가다. 그것을 거꾸로 읽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식 경제개발이 필시 실패할 것이라는 저주는 당시 변형윤 교수를 비롯한 적지 않은 좌파 교수들의 공통된 예언이었다. 한국, 싱가포르, 대만의 성공은 일시적이어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이 실패하자 제2의 논리가 등장했다. 경제개발 계획은 이승만 시절에 이미 입안되었기 때문에 박정희에게는 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헛소리도 실패했다. 경제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종이 위에 쓰여진 도상 개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최후의 궤변이다. 오직 박정희를 무너뜨리기 위해 어제의 반미주의자들이 졸지에 친미주의자로 전향했다. 채찍을 휘둘러 박정희를 독려했던 미국이 경제개발의 진짜 공로자라는 것이다. 실로 악질적이다. 경부고속도로며, 포철이며, 조선과 자동차 산업만 해도 미국은 반대로 일관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아니 한국을 작은 경공업 생산기지로 생각했던 미국과 선진국을 따라잡는 본격적인 중화학 산업국가로 기획했던 박정희는 인식의 지평과 개발 동기부터가 달랐다. 이렇게 역사의 자폐아요, 어둠의 자식을 자처하는 인간들이 아직도 많다. 이 정도면 좌익도 아닌 저질일 뿐이다.

쓴웃음이 나는 방송 프로그램도 넘쳐난다. 얼마전 EBS는 미국의 ‘시대정신’이라는 3류 컬트 집단이 만든 종말론적 동영상을 짜깁기 하는 방식으로 소위 ‘자본주의 5부작’을 방영했다. 금융에 대한 기초 지식조차 없이 자본주의는 무조건 당신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선동이었다. SBS도 최근 최후의 제국이라는 타이틀로 역시 자본주의를 저주하는 5부작 특집을 내보냈다. 중국 졸부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와 조용하고 검소한 라다크 마을을 대비시키고, 미국 거지와 남태평양의 평화로운 촌락 공동체를 비교하면서 문명을 저주하고 원시사회로 돌아가자고 호소하는 것이 이 프로의 주제다. 보기에 따라서는 오지 관광 프로그램이라고 혹평해야 할 정도다.

소위 고상한 야만인 이론을 기초로 자본주의와 현대문명을 공격하는 데 바쳐진 이런 종류의 기획물들에는 놀랍게도 정부 보조금도 투입되고 있다. 대체 어떻게 EBS가 3류 컬트를 베끼고 SBS가 반(反)문명 메시지를 전파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음습한 의식화 교재를 방불케 하거나 지구촌 오지 관광자료를 반자본주의 책동에 활용하는 이런 저질 프로들은 과연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