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성향의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친기업 정책으로 대폭 ‘우회전’했다. 기업들의 법인세를 대폭 깎아주기로 했다. 감세 규모는 앞으로 3년 동안 450억유로(약 62조5000억원)에 이른다. 법인세는 인하하되 서비스 및 제품 구매에 대한 부가가치세(VAT)를 인상해 세원 부족분을 메우기로 했다. 이번 정책으로 프랑스는 독일에 비해 뒤처진 노동생산성을 개선하고 고용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5년 이후 연 200억유로 감면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총리는 6일(현지시간) “법인세 감세로 기업 혁신과 고용 창출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단계적 기업 법인세 인하안을 발표했다. 프랑스 기업들은 당장 내년에 100억유로의 법인세 세액공제를 받는다. 공제금액은 2014년 150억유로, 2015년부터 매년 200억유로로 늘어난다.

2015년 이후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액은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1%에 이른다. 프랑스 정부는 다만 기업들이 공제받는 세금을 투자와 고용 확대에 써야 하고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자금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세금 감면에 따른 부족분은 부가가치세 인상과 정부 지출 삭감을 통해 충당할 예정이다. 부가가치세 세율은 2014년 1월부터 기존 19.6%에서 20.0%로 0.4%포인트 오른다. 음식점에 부과하는 세율도 7%에서 10%로 인상한다.

피에르 모스코비시 재무장관은 “법인세 감면으로 앞으로 5년간 30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GDP 증가율은 0.5%포인트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에로 총리는 “이번 조치로 기업의 노동비용이 6%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르코지 정책 닮은꼴

프랑스가 내놓은 정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초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대선 경쟁에 나서며 기업의 법인세를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부가세를 19.6%에서 21.2%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회당은 “부가세 인상은 기업의 부담을 일반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반대했고 정권을 잡은 뒤 인상안을 폐기했다.

현재 올랑드 정부가 발표한 부가가치세율 인상안과 숫자만 다를 뿐 같은 정책이다. 우파 진영인 대중운동연합(UMP) 의원들은 이날 의회에서 “지난 6개월간 사회당 정권의 실정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침체된 프랑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사회당의 ‘고육책’으로 보고 있다. 루이 갈루아 전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회장이 전날 내놓은 국가경쟁력 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법인세 인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보고서는 기업의 노동비용 부담 완화, 투자 촉진, 중소기업 육성 등 22개 권고 사항을 담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충격요법’이라 부르는 위원회의 권고안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다만 연 300억유로 규모의 세액공제 권고안을 모두 반영하지는 못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프랑스 경제를 살려내기 위한 역사적인 유턴”이라고 평가했다.

중단했던 정책을 되살려야 할 만큼 프랑스 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 유로스태트에 따르면 프랑스 실업률은 계속 상승해 지난 9월 기준 10.8%를 기록했다. 실업자 수도 1999년 이후 최대인 305만명에 달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프랑스의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며 “스페인·이탈리아와 같은 정도의 노동·서비스 시장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경제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