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요즘 갱년기 같아요. 자꾸 눈물이 나네요. 사는 게 뭔가 하는 생각만 들고, 남자로 태어나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부쩍 많아져요. 틈만 나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정신과 의사를 찾아온 한 중년 남성의 고백이다. 비단 그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나이 사십이 넘어 두 번째 사춘기를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젊음을 다바쳐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엔 사무치는 허무함이 가득차고, 뭔가 시도해보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 좌절에 빠진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잠시라도 긴장을 놓치면 인생이란 징검다리를 헛디뎌 개울물에 ‘첨벙’ 하고 빠질 것 같아 불안해지는 게 마흔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는 저자가 중년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해주는 마흔 살 심리 처방전이다. 저자는 현재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잠시 쉬려고 멈췄는데, 눈앞에는 벼랑만 있더군요. 저를 앞질러 갔던 동료나 제 자존심을 짓밟고 앞으로 내달렸던 후배도 벼랑 끝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지요. 여기에 서 있으려고 내가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왔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우울증 증세 때문에 찾아온 40대 남성에게 “벼랑 끝에서 봐야 할 것은 더 이상 앞이 아니다”고 조언한다. 정작 우리가 시선을 두어야 할 곳은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발자국”이라는 게 저자의 처방이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지, 내 지인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 등 지금껏 걸어온 길을 곱씹으며 중간 중간 뒤를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마흔은 포기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 시기다. 저자는 “중년을 지나 노년을 맞이할 때가 됐는데도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만 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때 영국 유학을 떠나는 거였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시더라도 그토록 원하던 미대에 진학해야 했는데’ ‘첫사랑 태익이를 놓치지 말걸’ 하며 마음속에 가둬놨던 후회를 떠나보내지 못한다면 계속 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굳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두 가지. 저자는 “마음을 흘러가는 강물이라 생각하고 조금 떨어져서 천천히 감상해보는 일도 필요하며,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점을 다르게 가져보는 습관을 기르라”고 권한다. 마흔이 되어서도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다면 삶의 활력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