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거래 급감…세수 증대 기대이하
지난 8월8일 발표된 2012년 세법개정안은 그동안 논란이 됐던 파생상품 거래 과세 방안을 담고 있다. 이 방안은 비록 시행 시기를 3년 유예하고 있지만 과세 대상인 코스피200 옵션과 선물 등 파생상품시장은 물론 자본시장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파생상품 거래에 세금을 매기자는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시장 변동성을 낮추는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됐던 단골 메뉴다. 거래세 부과에 찬성하는 측은 파생상품시장의 투기적 거래가 주식시장 변동성을 높여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히고 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매겨 거래를 억제해야 한다는 점을 주요 논거로 내세운다. 세수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도 주된 논거 중 하나다.

파생상품시장이 급속히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또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는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최근 사회적 요구에도 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면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가 타당한 정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규제 강화로 거래액 30% 감소…가격 왜곡·변동성 더 커질수도

[맞짱 토론] 거래 급감…세수 증대 기대이하
파생상품시장의 투기적 거래를 막기 위해 반드시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지부터 우선 따져봐야 한다. 세금이 아니더라도 금융시장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은 있다. 금융당국은 코스피200 옵션 승수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리고, 옵션 매수전용계좌를 폐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파생상품시장 건전화 방안을 마련해 지난 3월 시행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5월에는 주식워런트증권(ELW) 기본예탁금을 인상하는 등 파생상품시장 규제는 계속 강화되는 추세다.

규제를 강화한 영향으로 올 들어 선물·옵션 거래금액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선물·옵션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비중도 눈에 띄게 줄었다. 파생상품 거래를 억제하고 선량한 투자자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금까지 나온 규제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래세까지 부과해 거래량이 더욱 줄어들면 가격 왜곡과 변동성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거래세를 통해 파생상품시장을 규제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150년에 이르는 파생상품시장의 역사만큼이나 거래세에 관한 논의도 오래 전부터 있었다. 1990년 조지 부시 행정부와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파생상품 거래세 논의가 구체화됐다. 현 미국 정부도 금융감독 비용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거래세 부과를 시도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입법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스웨덴은 1984년 증권과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투자자들은 세금이 붙지 않는 대체상품에 투자하거나 파생상품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런던 주식시장으로 떠났다. 파생상품 거래세가 투자자를 해외로 내보내는 결과만 낳자 스웨덴은 1991년 모든 거래세를 폐지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파생상품 거래세를 도입했지만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일본은 1987년 증권 거래와 파생상품 거래에 세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거래가 크게 위축되자 세율을 단계적으로 내리다가 결국 1999년 거래세를 폐지했다.

대만은 1998년 파생상품 거래세를 부과해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해외로 이탈하고 시장이 위축되자 수차례에 걸쳐 세율을 대폭 내렸다. 거래세 부과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대만 당국은 거래세를 없애고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파생상품 거래세의 또 다른 효과로 거론되는 것이 세수 증대다. 그러나 파생상품 거래세가 세수 증대와 재정 건전성 강화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세금을 부과했을 때 세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은 세금 부과 후 거래량이 부과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파생상품 거래세를 도입하면 투자자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높아져 거래가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위험 헤지 본연의 기능도 약화…日·스웨덴 등 결국 거래세 폐지

한국거래소는 파생상품 거래세를 도입하면 시장의 주요 유동성 공급자인 고빈도거래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37~71%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 결과 코스피200 선물 거래대금은 30%, 코스피200 옵션 거래대금은 27% 각각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거래가 감소하는 만큼 세수 효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밖에 없다.

파생상품 거래세의 영향은 파생상품시장에만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선물·옵션 거래는 프로그램 차익거래와 다양한 헤지거래를 통해 현물 주식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따라서 파생상품 거래가 위축되면 현물 주식 거래 역시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현물 주식 거래에는 현재 거래세가 부과되고 있는데, 파생상품 거래 위축의 연장선에서 현물 주식 거래가 감소한다면 거래세 수입 역시 줄어들게 된다.

해외 사례도 파생상품 거래세가 세수 증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일본은 1998년 파생상품 거래세 수입이 정부 일반회계 수입의 4.2%에 이르렀으나 1993년에는 이 비중이 0.96%로 축소됐다.

투자자들이 지급해야 할 비용은 거래세 부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파생상품 거래가 위축되면 원하는 가격에 거래를 체결하지 못하고 불리한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는 등 간접적인 거래 비용이 증가한다. 거래가 위축돼 위험 헤지와 가격 발견이라는 파생상품시장 본연의 기능이 약해지면 주식 채권 등을 보유한 기업은 가격 변동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00대 상장기업 중 85개 기업이 위험 회피를 위해 장내파생상품 거래를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본시장 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중국 선물시장은 출범 2년 만에 코스피200 선물 거래량을 추월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이 파생상품 규제를 강화하는 사이 세계 각국의 투자자들이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은 국내 파생상품시장 경쟁력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우려가 있다. 파생상품시장 거래세 부과는 투기 거래를 억제하고 세수를 늘린다는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자본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실물경제에도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

남길남 < 자본시장硏 파생상품실장 >

△서울대 통계학 박사 △한국수자원공사 금융위험관리위원 △국민연금 리스크관리위원회 실무위원 △G20 장외파생상품 인프라 개선 TF 위원△금융위원회 파생상품 제도개선 TF 위원
[맞짱 토론] 거래 급감…세수 증대 기대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