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첫 번째 전력난 고비로 예상됐던 27일 한낮 예비전력이 안정권인 400만㎾를 크게 웃돌며 일단 위기를 넘겼다. 철강업체 등 대형 전력사용 기업들이 전력당국의 수요 관리에 적극 ‘협조’한 덕분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를 방문, “기업에 전기 쓰지 말라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산업계 수요조절로 위기 넘겨

전력거래소는 당초 이날 최대 전력수요가 전날보다 250만㎾가량 높은 7550만㎾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오전 11시부터 비상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날 최대 전력수요는 오후 1시40분 기록한 7287만㎾로 상대적으로 넉넉한 470만㎾(예비율 6.45%)의 예비전력을 확보했다. 전날 최저 예비전력(375만㎾)보다 100만㎾ 가까이 높은 수준이었다. 오후 2시17분 9만㎾ 용량의 대상복합4호기 가스터빈이 고장나 한때 긴장감이 돌았지만 전체 전력수급에는 큰 차질을 빚지 않았다.

이날 안정적인 전력 수급에 도움을 준 곳은 철강업계였다. 전일 최대 350만㎾의 전력을 썼던 철강기업들의 전력량은 이날 오후 1시 이후 120만㎾까지 떨어졌다. 순간 230만㎾의 전력을 덜 쓰면서 전력부하 감축에 힘을 보탠 것. 이날 시간당 평균 수요관리 전력량도 당초 예상보다 40만㎾ 많은 240만㎾를 기록했다. 정부와 사전계약을 맺은 4000여개 기업들의 절전 참여가 그만큼 활발했다는 얘기다.

◆MB “전기 때문에 생산지장 안 돼”

이 대통령은 이날 전력거래소에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으로부터 전력수급 상황을 보고 받은 자리에서 “에너지 위기 때문에 기업들이 생산에 지장을 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가 어렵고 그대로 둬도 위축되는데 전기를 못 써서 생산이 감소하면 중대한 실책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생산을 줄이라고 하면 일자리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수요관리에 기댄 정부의 전력수급 안정 대책이 발전소 확충 등 전력공급 확대정책으로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신 “가정이나 일반 서비스 시설에서 조금 더 절전해야 한다”며 “소비에 따라 (전력)생산만 늘리는 것은 에너지정책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8월 중순 전후 최대 전력난 예상

올여름 첫 번째 전력 위기는 넘겼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휴가에서 복귀하는 8월 셋째주와 넷째주 사이 최대 전력피크를 기록할 것으로 보여 정부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이 시기 예비전력은 철강업체 등 산업계에 전력 사용 자제를 요청하더라도 140만㎾대에 그치면서 전력 예비율도 1%대로 추락할 수 있다. 원전 1기라도 고장으로 멈춰서면 작년 9·15 정전대란과 같은 전국 블랙아웃(동시정전)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여름철 전력공급 확대를 위해 총 9기에 달하는 화력발전소의 정비 기간을 가을로 연기하며 풀가동하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2014년까지 전력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력피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계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호/차병석/조미현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