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2.8%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을 받고 있던 2009년 3분기(1.0%) 이후 2년반 만에 최저치다. 사실 우리 경제는 작년부터 세계경제 성장률을 밑돌기 시작했다. 세계경제가 평균 3.9% 성장한 데 반해 우리는 3.6%밖에 안 됐다. 올해 성장률은 3.5%, 내년에는 4.0%로 예상되지만 역시 세계 평균치에 못 미친다는 게 IMF의 전망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4% 안팎 수준에 그친다는 분석이 나온 지도 오래됐다.

가장 역동적이라던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하지만 누구도 성장을 걱정하지 않는다. 포퓰리즘을 대량 생산하는 정치권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정부조차 성장을 도외시한다. 기획재정부의 올해 경제운용계획에는 성장이란 표현이 단 한 군데도 없다. 심지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란 개념조차 보이지 않는다. 너나없이 더 넓은 복지와 더 많은 분배만을 얘기할 뿐이다.

한국 경제의 침몰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경제성장률은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떨어져 급기야 반토막 났다. 그림에서 보듯 김영삼 정부(1993~1997년) 때 연평균 7.4%였던 것이 김대중 정부(1998~2002년) 때 5.1%, 노무현 정부(2003~2007년) 때는 4.3%로 추락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고작 3.2%다. 1960~1980년대 ‘압축 성장’에서 지난 20년간 ‘압축 추락’으로 치달은 것이다. 물론 지금 경기가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 바닥을 쳤다는 신호를 보내는 경제지표들도 많다. 또 지난 20년간 외환위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충격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요인 때문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경제성장의 내용이 그렇다. 기업 수익성은 리먼 사태 때보다도 나빠졌다.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작년 5.4%로 2010년(7.2%)에 비해 1.8%포인트나 추락했다. 2008년 5.7%, 2009년 5.8%보다도 낮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이자보상비율은 2010년 551%에서 작년 467%로 급락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질주하는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를 포함했는데도 그렇다. 이들 3개사의 작년 영업이익은 28조원으로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123조원)의 22%나 된다. 이들을 뺀 이자보상비율은 363%로 더 떨어진다. 탁월한 몇몇 글로벌 업체들 덕에 실제보다 덜 나빠 보이는 착시현상일 뿐,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이것이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앞으로 전망도 우울하다. 저출산·고령화 충격에다 사회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탓이다. LG경제연구원은 향후 5년간 3%대 초반의 저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30~40대 주력 생산인구는 매년 1%씩 줄어든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의 14% 이상인 고령사회가 불과 6년, 20% 이상인 초고령사회까지는 고작 14년 남았다. 그때가 되면 더 성장하고 싶어도 불가항력이다. 스스로 운명을 바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다.

한 나라의 성장이란 단순히 GDP(국내총생산) 증가율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경제적 발전이 사회적 성숙과 함께 가야 진정한 성장이다. 작금의 이념·세대·계층 간 갈등이나 민주주의의 위기도 미성숙한 경제를 반영한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갈수록 부진하고 사회는 후진구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는 형국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 추락은 경제가 성숙돼 자연스럽게 저성장 기조로 진입한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채 1인당 소득 2만달러에서 주저앉고 만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에 빠진 모습이다. 성장의 중요성을 망각한 조로화 증상이다. 소득 3만~4만달러가 되고 사회적으로 성숙해진 연후에나 성장률 하락을 ‘안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성장의 불씨를 어떻게든 되살려 소득 4만달러까지 올려놔야 한다. 성장이 없으면 선진국가로 가지 못한다.